다산 정약용의 역작 <목민심서>는 수령이 아전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수령이 좋아하는 바는 아전들이 모두 영합하게 마련이다. 내가 재물을 좋아하는 줄 알면 반드시 이익으로써 유인할 것이니, 한 번 꾐을 받으면 그 때는 그들과 함께 죄에 빠지게 된다”고 일갈했다.
다산은 아전들이 수령의 취향에 따라 영합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세태를 고발했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을 밝히는 관리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백성을 괴롭혀 치부하는 사례가 많았나보다.
<세종실록> 세종 7년 3월20일 기사도 “전라도 찰방 이종규가 변계량의 죄를 감추다”라고 기록했다.
“겸 대사헌(兼大司憲) 황희(黃喜)가 일찍이 남원 부사(南原府使) 이간(李侃)이 보낸 유지(油紙) 안롱(鞍籠)을 받은 바 있었는데, 이 때 이르러 일이 발각돼 피혐(避嫌)했다.”
실록은 “당초에 전라도 찰방(全羅道察訪) 이종규(李宗揆)가 남원에 이르러 이간이 여러 사람에게 물품을 보낸 사문서를 수색해 얻은 이를 조사한 바, 서울과 지방의 관리가 수뢰(受賄)를 범한 자가 많았으나, 유독 권귀 층에는 관여된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그 문서에서 삭제된 여부를 자못 의심하던 중 오직 황희만이 자수(自首)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마침내 은폐하고 말았던 것”이라고 사건의 내막을 밝혔다.
이어 “이로 인해 시론이 황희만을 무던하게 여겼으며,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사서(私書)로 죄를 청했으나, 종규가 이를 비호해 일이 끝내 발각되지 않았다”며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그를 곧지 못하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우리가 잘 아는 명재상 황희도 사사로이 재물을 취했다가 발각된 모양이다. 황희 정승도 수뢰의 혐의를 받고 자수를 했다고 하니, 당시 뇌물수수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산의 지적대로 수령이 처신을 잘못하면 아랫사람들이 부패하기 마련이다. 요즘 수령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대목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