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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여의도, 그리고 인(仁)
기고/김승진
  2019-05-31 17:57:20 입력

1. 뤼순(旅順) 유감(有感: 느끼는 바가 있음)

다롄(大連)국제공항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의 일정 변경 통보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틀간의 다롄 여정 중 뤼순(旅順) 방문은 원래 둘째날이었고, 그래서 검은색 셔츠는 다음날 입을 생각으로 여행용 캐리어 깊이 묻어둔 채로, 첫날은 다롄 관광에 알맞은 화사한 파란색 셔츠를 걸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필 도착한 날에 열린 마라톤대회로 다롄 시내 이동이 어려워 부득이 일정을 바꿔 첫날 뤼순에 갈 수밖에 없었단다. 평소 잘 입지도 않고 여행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검은 옷을 일부러 챙긴 것은 여행 2일차 뤼순 감옥과 관동법원 방문을 위해서였는데…. 검은색 복장으로라도 나름의 예(禮)를 드리려던 생각은 그냥 생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바지와 재킷은 검은색이니 다행이라는 위안 속에 뤼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구 씨양양거리 139번지.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여기가 감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찬란한 봄의 정취는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감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계단을 밟기 전까지만 딱, 뤼순의 5월은 아름다웠다.

이윽고 들어선 감옥 안. 차갑고, 습하고, 어두웠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그 문 앞의 공기냄새가 딱 이렇겠구나 싶은, 공포와 잔인함을 잔뜩 머금은 무거운 공기는 어깨를 짓눌렀다. 수감자들이 매일 아침저녁마다 강제노동 전후로 통과했다는 검신실(檢身室). 나무틀에 아직도 축 쳐져 걸린 푸른색 수의(囚衣)의 남루함도 항일투사들의 기개를 감추어 덮지는 못했으리라. 그리고 음침한 복도 양 옆에 늘어선 감방들. 직접 겪지 않는 한 보는 것만으로는 형언하기 어려울 비참함으로 가득 찬 좁은 공간은 그저 슬픔과 분노만 치밀게 할뿐이었다.

1909년 10월26일 의거 후, 11월3일 뤼순 감옥으로 압송된 안중근(安重根)은 간수부장 당직실 옆 독방에 구금되었다. 바로 그 곳,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까지 그가 머물렀던 공간. 그 앞에 서서 숨소리를 죽인 채 시선을 멈춘 어느 한국인의 마음은 109년 세월을 거슬러 그를 만나고 싶었다.

뭐라고 인사를 드릴까. 아니 존경과 흠모가 사무쳐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겠구나. 이어 빛이 들지 않는 암방(暗房)을 지나고 마주한 고문실의 형틀에는 소름 끼치는 비명과 처절한 핏방울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슬픔과 분노는 사형장에 걸린 밧줄 올가미를 목도한 순간 절정에 이르렀다.

발걸음이 다다른 마지막 공간은 뜻밖에도 밝고 깨끗했다. 안중근 의사의 흉상과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은 기념실의 벽에는 그의 강인함과 용기가 그대로 서린 휘호 22점이 액자와 족자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흉상 앞 묵념 후에 이르게 된 기념실 옆.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이 순국한 곳.’ 뤼순 감옥 입구에서부터 온 몸을 휘감던 공포와 분노, 슬픔과 경외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殉國) 현장에서 한 줄기 눈물로 왈칵 터져 나왔다.

순국 5분 전의 사진,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지어 보낸 하얀 수의(壽衣)를 입은 그의 비장하고 담담한 모습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감옥 밖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여전했다. 불멸(不滅).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빛과 바람이 되어 우리를 지키고 계셨다. 이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는 무겁고 큰 뿌리로 그는 역사에 남아 후세를 지키고 계신다. 의사 안중근. 결코 멸하지 아니할 민족의 무거운 뿌리(重根)다.

2. 여의도(汝矣島) 유감(遺憾: 마음에 차지 않는 섭섭한 느낌)

국회의사당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걷다가 만나는 마지막 건물, 헌정기념관은 국회방문자센터를 겸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어린이와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국회의 의미와 ‘헌법 정신’을 배우고 간다. 옹기종기 재잘거리며 아이들이 구경하는 헌정기념관 1층 로비의 번쩍이는 대리석 벽면은 살짝 위압감마저 들게 한다.

그 벽면에 줄지어 선 역대 국회의장들의 금빛 액자 속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와 사진들 아래로는 이런저런 국회 진기록과 최다선 국회의원을 안내하는 전시대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국회의원 가족당선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부자(父子) 국회의원, 부부(夫婦) 국회의원, 형제(兄弟) 국회의원들을 친절하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진열장이 손님들을 맞는다.

‘국회의원 가족당선 기록’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의 기틀인 ‘헌법’을 제정했고 개정할 권한을 가진 국회다. 좀 지나친 요구겠지만 국회의 곳곳에는, 심지어 벽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까지도 그 헌법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헌법 제11조 제2항과 제3항(특수계급 금지와 영전 일대의 원칙), 헌법 제13조 제3항(연좌제 금지)에 담긴 근본정신은 일체의 신분상 세습 및 불이익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독재 왕정 붕괴와 노예제 폐지가 말하듯이 인류 발전의 역사는 곧 세습 타파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의 세습은 ‘혈연관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신분의 물려받음’이 그 사전적 의미일 테지만, 고전적인 세습은 사라진 오늘날에도 소위 수저계급론으로 상징되는 혈연·가족관계의 사실상 영향력은 여전히 기승이다.

그저 역대 국회의원들의 진기한 기록의 일단을 흥미롭게 알리는 것뿐인데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삐딱하다고 비아냥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되묻겠다. 굳이 부자, 부부, 형제 등 가족이 금배지를 함께 달았던 진기한(?) 경우들을 방문자센터 1층 로비에 애써 소개할 필요나 의미는 무엇인가? 단지 흥밋거리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라리 그냥 흥미일 뿐이라면 그나마 괜찮겠지.

하지만, 아직 삶과 세상에 대한 가치관 형성이 미완인 아이들에게는 ‘가족당선 기록’이란 단순한 흥미가 아닌 ‘수저계급론의 자만 혹은 체념’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넉넉하다. 헌정기념관 1층 로비, 방문객을 위한 그 귀중한 공간에는 있느니보다 없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3. 인(仁: 안으로는 모질고 밖으로는 어질다)

가족은 소중하다. 다만 그 소중함은 가정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울타리를 넘는 순간, 가족의 소중함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추악한 세습이 되고 만다. 가족에 대한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애착이 가정 밖으로 뛰쳐나가 온갖 비리와 불공정의 단초가 되고 마는 사례들은 최근의 대기업 채용비리 사건들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국회의원 가족당선 기록’을 전시해 둔 국회 헌정기념관 바로 앞에는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이 태극기를 움켜쥐고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그리고 2015년 제막된 이 동상 왼쪽 옆면에는 ‘지사인인살신성인(志士仁人殺身成仁: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두 번 되풀이되는 글자. 어질 인(仁).

어짊(仁)은 자신과 그 연장(延長)인 가족의 경계 밖으로만 작용해야 한다. 진정한 어짊(仁)이란 안으로는 모질고 밖으로만 어진 것이다.

안중근 의사라고 부모처자식이 없었겠는가? 순국 직전 그가 어머니와 부인과 아들에게 남긴 편지글 속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함께 천륜마저 모질게 희생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실천한 어짊이 묻어 있다.

거꾸로 안으로만 어질고 밖으로는 모진 오늘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돌아본다. 보통의 사람은 결코 아무나 따르지 못할 경지의 그 어짊, 의사 안중근의 인(仁)을 그래도 우리는 그 절반이라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께서 바라시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모습일 것이다.

 

2019-05-31 18:11:35 수정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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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쵸 멋진 글이네요. 624 15/11 12-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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