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님, 차비가 없어서 출석을 못 했습니다.”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지 6일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K씨의 경제적 상황을 알고 있는 터라 면담일시를 조정하였으나,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주임님,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서 출석할 수가 없어요.”
K씨는 무허가 쪽방에 사는 가난한 용접공이다. 조정한 출석일에 겨우 만나게 된 K씨를 다그쳤다.
“술 마시고 유흥에 쓸 돈은 있고, 보호관찰소에 출석할 차비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K씨는 차비가 없어서 출석하지 못했다는 기간 동안 주취 상태에서 재범을 저지른 것이다. 주취 상태에서의 범죄전력이 여러 차례인 K씨의 음주습관의 개선을 돕기 위해 특별준수사항의 추가를 신청하기로 하였다.
“이제부터 일정량 이상의 음주는 하시면 안 됩니다. K씨,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실수하신 적이 셀 수도 없이 많아요. 여태까지 낸 벌금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데 아깝지 않아요?”
담당자의 얘기에 K씨의 신세 한탄이 이어졌다.
추가된 특별준수사항을 고지한 지 2개월 만에 K-PIS 재범사건현황에 새로운 검찰사건이 접수되었다. K씨다. 이번에도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렸다. 담당자는 출석한 K씨를 재차 다그치지만, 돌아오는 답변에 당황했다.
“주임님, 이발한 지 너무 오래되어 출석하는 길에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잘랐는데요. 이발비가 모자라 2,000원을 내지 못했어요. 돈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만원을 쥐여주면서 한마디 했다.
“빌려드리는 거니까, 남는 돈으로 술 사드시지 말고 나중에 꼭 갚으셔야 해요.”
이후 결국 K씨는 특별준수사항으로 외출제한명령까지 추가되었다
외출제한명령을 실시한 지 한 달이 되어 갈 즈음, 출석한 K씨는 담당자에게 외출제한명령에 대해 항의했다.
“주임님, 너무 부당한 거 아닙니까.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밤에 전화를 받게 하는 겁니까.”
담당자는 대상자가 외출제한명령을 받게 된 사유에 관해 설명했다.
“K씨는 본 건을 비롯해서 최근 재범 사건들 역시 야간에 음주 후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죠? 그래서 처음에는 음주습관을 지도감독하기 위해 음주 관련 특별준수사항이 추가된 것이고, 이후 다시 동종재범을 하여 야간에 외출하여 음주하는 생활습관을 지도감독하기 위해 외출제한명령 특별준수사항이 추가된 것이에요.”
K씨는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그제야 본인이 갑작스레 항의한 이유를 말했다.
“주임님, 제가 사는 쪽방은 옆방과 판자 하나로 나뉘어 있어요. 그래서 새벽에 전화가 울리면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깹니다. 최근 며칠간 옆방 사람과 언쟁이 있었고 어제는 말다툼까지 했어요. 그래서 야간 전화에 대해 말씀드린 겁니다.”
며칠 뒤 담당자는 K씨의 주거지에 방문했다. 주거지 주변은 전부 공장이었으며, K씨의 집은 공장건물 옥상에 위치한 쪽방이었다. 옥상에는 5가구 이상의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손으로 두드려보니 K씨의 말대로 각각의 방들은 얇은 판자 하나로만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옥상 구석에는 술병들이 가득 쌓여 있었으며, 어제 마시다 남은 막걸리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상자의 음주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겠구나.’담당자는 생각했다.
주거환경의 개선을 위한 지원처를 알아보던 도중, 대상자의 주거지를 관할하는 남양주시 화도수동행정복지센터의 주관으로 민관합동 취약계층 지원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대상자에게 원호를 지원하여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 다행히 화도수동행정복지센터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며칠 뒤 K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임님, 한 번 놀러 오세요. 주임님 덕분에 집도 옮기고 세탁기 같은 것들도 도움받았습니다. 읍사무소 분들도 다녀가셨어요. 도와주신 분들한테 감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주거지로 출장을 갔다. 주택밀집지역에 위치한 빌라 건물의 1층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깨끗한 원룸이었다. 대상자는 긴급생계비, 주거지 보증금 300만원,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지원받았다며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후 K씨는 보호관찰이 종료하는 6개월가량의 기간 동안 재범사실 없이 성실히 생활하였으며, 기간 만료로 보호관찰이 종료되었다.
어쩌면 즉각적인 제재만큼이나 우리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상자의 변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작은 도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