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재위 시절인 150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가히 혁명적인 제련 기술이 개발됐다. 제련은 은광석에서 납을 제거해 순은을 추출하는 기술이다.
연은 분리법이라고도 불리운 이 첨단 기술은 무쇠 화로나 냄비 안에 재를 두르고 은광석을 가득 채운 후 깨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덮고 숯불을 피워 녹여내는 방법이다.
불행히도 연은 분리법은 정작 개발국인 조선에선 각광 받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사농공상의 폐쇄적인 신분제는 세계 첨단의 기술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왜구라고 무시했던 일본은 달랐다.
16세기 중엽 일본 상인들은 조선의 연은 분리법에 크게 주목했다. 이들은 조선의 장인을 초빙해 첨단 기술 도입에 열중했다. 당시 일본은 국제 통화로서 주가를 높이 올렸던 은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았다.
일본은 1530년대에 이와미 은광을 개발하며 순도 높은 은 생산에 총력을 집중했다. 자국의 은과 조선의 연은 분리법을 결합해 최고의 순은을 생산했고, 일본산 은은 명으로 대거 유입됐다. 특히 포르투갈 상인들은 은을 받고 조선 침략의 원흉인 조총과 교환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조선의 은 제련법으로 가치를 높인 일본산 은이 임진왜란의 원흉인 조총 수입 대금으로 악용됐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기술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조선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최근 일본과의 무역 전쟁이 뜨겁게 현해탄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은 몇 수 위인 반도체 관련 기술력을 갖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한 때 세계 최고의 은 제련법을 갖고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 일본에게 은 제조 주도권을 빼앗겼던 조선의 굴욕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권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