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체결된 신축조약은 청나라의 굴욕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당시 청의 실권자 서태후는 ‘청조(淸朝)를 받들고 외국을 멸망시킨다는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걸고 배외(排外)를 내세운 의화단을 통해 서양세력과 맞서고자 했다.
의화단은 화베이를 비롯해 동북지방·몽골·쓰촨 등지에서 외국인이나 교회를 습격하고 철도·전신을 파괴하며 외국제품을 불태웠다. 청나라 정부는 이들을 물밑 지원하며 1900년 6월 열강에 선전포고했다.
이들은 수도 베이징에까지 입성해 청군과 함께 열강의 공사관을 공격하고 베이징이나 톈진에서는 의화단원이 거리에 넘쳤다. 근교의 농촌에서 베이징에 집결한 의화단원은 10대의 소년이 많았다. 후일 마오쩌둥이 저지른 중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문화대혁명의 홍위병도 의화단을 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의 기세에 놀란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미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 등 8개국은 연합군을 구성했고, 8월에는 베이징을 공격해 55일차에 여러 나라의 공사관원들을 구출했다. 후일 ‘북경 55일’이라는 헐리우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의화단을 후원한 서태후와 광서제는 시안으로 도피했다. 열강들은 이를 구실로 삼아 중국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중국을 겁박해 1901년 신축조약을 체결했다. 청은 독일·일본 등에 사죄사를 파견해 배외운동 금지, 관세·염세를 담보로 한 4억5000만 냥의 배상금 지불, 베이징에 공사관 구역 설정, 외국 군대 주둔, 베이징 주변 포대 파괴 등을 약속했다.
결국 청은 막대한 배상금으로 재정난에 허덕이게 됐고 10년 후 멸망했다. 의화단 사건은 무능하고 국제 정세에 어두운 청의 지도자들이 자초한 망국의 신호탄이다.
최근 한미 동맹과 대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가 여기 저기 감지되고 있다. 특히 지소미아 연장 논란으로 미국이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했고, 급작스러운 방위비 인상 요구로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과의 외교 마찰은 아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상호 비방전만 펼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노골적인 영공 침범이 있는 상황 속에서 의화단과 같은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그 손해는 우리 몫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현실외교가 필요한 때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