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나누고 세상을 연 거신 미륵이 옷을 구한 뒤 생각했다. 더 이상 익히지 않은 날 것을 먹을 수 없으니 물과 불의 원리를 찾아야겠다고. 그래서 메뚜기와 개구리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세 번째로 생쥐에게 묻자 대답 대신에 “답을 주면 무엇을 해 줄 것이냐?”고 묻는다.
세상을 연 신에게 겁 없이 거래를 요구한 것이다. 미륵신은 세상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아량으로 생쥐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여 답을 주면 세상의 뒤주를 가지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생쥐는 물을 찾는 법과 부싯돌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미륵신에게 알려주고 세상의 모든 곡식을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다.
뒤주, 즉 곡식을 차지한다는 것은 풍요를 얻는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농업을 귀하게 여겼던 나라에서 곡식을 차지한 쥐는 풍요와 재물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으로 생쥐는 가진 지식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도 해석된다. 하지만 인류가 곡식을 저장하게 된 이후로 쥐는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기껏 모아둔 식량을 훔쳐 먹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의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한 일이다. 인류에게 불을 전해주고 싶었던 신으로부터 최초의 수수께끼를 푼 대가로 받은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최초의 신과 거래를 할 정도로 지식을 가진 쥐가 그대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주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먹고 싶은 것은 어디에 있든 마음대로 꺼내먹으면서 살고 있다.
2020년의 태양이 떠올랐다. 경자년(庚子年)은 육십간지 중 37번째로 재물과 다산, 풍요를 상징하는 쥐의 해다. 올해는 특히 ‘하얀 쥐의 해’라고 하는데, 흰쥐는 쥐 중에서도 우두머리이며 지혜까지 겸비하고 있는 존재다.
우리 고전에 따르면 쥐는 재물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세기에 걸쳐 우리나라 설화를 수집하고 정리한 <한국구비문학대계>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자고 있는 남편의 콧속에서 나온 쥐를 도와주고 부자가 되는가 하면 콧속의 쥐를 따라갔다가 남편의 도둑질을 막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조선팔도의 모든 쥐가 고양이를 피해 강 건너로 도망가는 끝없는 이야기를 해서 부자가 되고, 매일 돈을 물어다주는 쥐 덕분에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매일 밥알 한 톨씩 주는 사람에게 집이 무너지는 것을 알려준 은혜를 값은 쥐, 쥐가 배에서 내리면 출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등 쥐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승되는 설화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비룡소 <흰쥐이야기>에서.
사람의 혼은 생쥐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위의 이야기처럼 사람의 코로 생쥐가 들락날락하는 이야기의 다른 형태다.
옛날 한 아주머니가 밤에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 코에서 빨간 생쥐 두 마리가 나왔다. 성가시게 느낀 아주머니가 막대기로 생쥐를 한 마리 탁 때려서 죽였더니 자고 있던 사람이 탁 죽어 버렸다. 이런 생각은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 이야기로 나오기도 한다. 쥐가 애초에 사람의 혼이었기 때문에 인체 일부를 습득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변형하는 기괴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쥐와 사람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목숨, 건강 등을 위한 의학이나 생명과학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생쥐를 이용한 생체실험이다. 사람보다 우선하여 모든 병을 먼저 앓아서 약의 효력 및 부작용, 병의 진행 척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니 전염병과 곡식 도둑이라는 생각만으로 쥐를 싫어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신해서 희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하루 상상도 못할 수많은 일이 생겨나고 있다. 그 일로 인해 어떤 사람은 웃지만 다른 사람은 가슴을 치며 울기도 한다. 정치는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사람들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편안하고 행복하며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고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지식과 풍요의 상징인 하얀 쥐의 힘을 받아 지난해보다는 부쩍 성장하는 경자년을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