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미련 없이 제 뜻을 접으려고 합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야 안팎으로 ‘정치세습 논란’을 촉발시킨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석균(48)씨가 지난 1월23일 밝힌 4.15 총선 불출마 입장이다.
서울대학교 입학 후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운동에 투신,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국민의 정부 초대 정무수석, 노무현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 당 대표 및 비대위원장 등을 지낸 문 의장은 명실공히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런데 아들의 총선 도전으로 난데없이 정치세습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쓸 뻔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의정부갑구를 전략공천지역으로 결정한 뒤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그 사이 의정부에는 석균씨의 출마를 부추기는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부 목회자(2월20일)와 상인회(2월19일), 석균씨의 고교 동문(2월18일) 등이 잇따라 성명서와 탄원서를 발표하고 “전략공천 철회”, “의정부를 위한 무소속 출마” 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정부갑 핵심 당직자와 당원들도 탈당을 벼르고 있다. 일종의 민주당 압박인 셈이다.
의정부에서는 4년 전 총선 때도 민주당이 문 의장을 공천에서 1차 탈락시키자 시·도의원과 핵심 당원들, 일부 교계와 노동계 등이 반발 여론몰이에 나서 문 의장의 공천 배제를 백지화시킨 성공사례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4년 전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 의장의 공천 배제가 명분 없는 정치적 패권 다툼에 따른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치세습이라고 비판하는 국민의 불편한 심기가 엄중하게 실존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일부의 여론몰이를 핑계로 석균씨를 공천한다면, 그 순간 전국 선거판이 뒤틀리는 대형사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민주당의 상징’인 문 의장의 아들이 탈당(의정부갑 상임부위원장)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즉시 전국 이슈가 되면서 권력욕에 눈과 귀가 가려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소속으로 나선다고 해도 당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명분도 실리도 잃는 자해행위에 불과할 수 있다.
석균씨는 이제 아버지가 정치를 떠나 명예롭게 고향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일부 세력이 온갖 명분과 이유를 들이대며 출마하라고 해서 흔들리지도 않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도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간에는 ‘정치는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나 하는 짓’이라는 비아냥이 많이 떠돈다. 진정으로 정치를 하고 싶다면,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심장부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버지 지역구에서 조직과 인맥을 그대로 물려받아 출마하기에는 ‘조국 사태’가 불러일으킨 국민의 불편함이 여전히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