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아니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군주는 연산군이다.
연산군이 조선의 역사에서 저지른 최고 범죄는 국론분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건국 주체인 훈구파는 경장이라는 자신들의 역사적 소명을 외면하고 부정부패의 늪에 빠져 민생을 저버리고 오로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한명회는 자신과 자기 계파의 기득권을 수호하고자 택군, 즉 군주를 선택하는 권력남용을 서슴 없이 저질렀다. 다행히 조선 통치체제를 완성한 성종의 치세를 만들었지만, 왕권을 위협하는 외척의 정치개입이라는 폐단을 남겼다.
성종은 사사건건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는 훈구파가 싫었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양성했다. 사림은 여말선초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해 향촌에 은거하던 반정부 세력인 온건파 사대부의 후예다.
사림파는 훈구파의 전횡으로 문란해진 조선의 기강을 도의정치로 정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들은 노회한 정치세력인 훈구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특히 선왕 성종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한 연산군은 훈구파의 계략에 빠져 무오사화를 주도해 사림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아울러 자신의 모친인 폐비 윤씨의 원한을 풀고자 갑자사화마저 일으켜 조선의 의기 있는 선비들의 씨를 말렸다. 피의 복수가 낳은 희생의 대가는 상상 외로 매우 처참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 연산군 재위 시절 발생한 두 차례 사화는 중종과 명종대까지 이어졌고, 참혹한 권력투쟁에 의해 조선의 인재들이 역사 속에서 말없이 사라졌다. 민생도 같이 사라졌다.
결국 선조가 즉위하면서 사림파의 시대가 전개됐지만 붕당이라는 새로운 권력투쟁이 발생했다. 얼마 안 지나 조선은 임진왜란의 참화를 맞이했다. 연산군은 조선을 망친 단초였다.
21대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앞날은 시계 제로다. 코로나19로 하루에도 수백명의 확진자가 폭증하고, 그 여파로 경제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자신들의 당선에만 매달리고 있다. 국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욕에 빠진 여야 정치인 모두가 연산군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