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국회의사당 정문 맞은 편에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달리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그의 이름은 테리 폭스(Terry Fox)다. 1977년 18세의 나이에 다리뼈에 악성 골육암이 생겨 무릎 위 15㎝를 잘라내야 했다. 오른쪽 다리를 거의 들어내다시피 한 대수술이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 병원에서 그는 우연히 마라톤 잡지를 보게 되었고 그곳에 실린 뉴욕마라톤에서 사상 처음 의족을 한 채 완주한 딕 트라움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결심했다. “내가 의족을 달고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나도 마라톤을 할 것이다.”
16개월에 걸친 재활치료가 끝나자 그는 의족을 하고 마라톤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 캐나다의 암협회에 한 통의 편지를 썼다. “나의 이름은 테리 폭스이고 현재 한쪽 다리 절단 장애인입니다. 2년6개월 전에 다리 절단수술을 하였지요. 수술 전 농구코치가 보여준 장애인 마라토너의 기사를 읽고 결심했습니다. 내 장애를 마라톤을 통해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캐나다 횡단을 하려 합니다. 암치료 기금도 모으고 암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싶어 계획한 일입니다. 도움을 주세요.”
암연구와 치료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약 8,000㎞에 달하는 대륙횡단 마라톤을 감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성한 사람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편지를 받은 캐나다 암협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편지를 무시했다. 그의 가까운 친구들도 코웃음을 쳤고 부모님들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테리 폭스는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1980년 4월12일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주 세인트 존스 항구에서 출발해 달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제대로 뛸 수 없었다. 통증이 너무나 심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지만 그는 이왕 죽을 목숨 달리다가 죽자는 각오로 뛰었다.
며칠 후 그는 성한 다리인 왼쪽을 두 번 뛰고 다음에 의족을 단 오른쪽 다리를 한 번 뛰는 자신만의 독특한 달리기 주법을 개발하여 달리게 되었고 그러자 통증도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경찰도 교통에 방해가 된다며 중단할 것을 종용했다. 들어오는 성금도 한 푼 없었다. 퀘백시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미국 시애틀 방송과 인터뷰를 하였고 시애틀 라디오 방송은 테리 폭스의 마라톤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암환자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는 무리한 달리기 탓에 절단된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염증으로 고통이 너무나 심했지만 희망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방송 이후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미국과 캐나다 언론들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캐나다TV 방송은 테리 폭스의 마라톤 소식을 매일 저녁 보도했고, 캐나다와 미국 시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져 외롭게 시작한 마라톤은 이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테리 폭스가 의족을 끌고 뛰는 모습은 가정에서 TV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가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를 격려했다.
1980년 9월1일, 출발 143일째 5,373㎞ 되는 캐나다 중부 지방 온타리오주의 선더베이에 도착한 테리 폭스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며 쓰러지고 말았다. 목표인 8,000㎞의 3분의 2 지점에 해당되는 거리였다. 급히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암이 폐까지 번졌음을 발견했다. 그 후 테리 폭스의 목숨을 건 달리기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그는 1981년 6월28일 의미 있는 삶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캐나다 전국에 조기가 걸리고 국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트리도 수상은 “테리 폭스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테리 폭스 재단이 설립됐고 해마다 9월이면 캐나다의 5,000여개 학교가 참가하는 ‘테리 폭스 달리기 대회’가 열리며 세계 50여개국 마라토너들도 동참하고 있다. 그가 달리기를 중단했을 때 까지 모금한 170만 달러는 사후 2300만 달러로 늘어났고 모금은 지속되어 지금은 5억 달러를 넘게 되었다. 1980년, 1981년 2년 연속 캐나다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으며 최연소로 캐나다 시민훈장인 ‘오더 오브 캐나다’를 받았다. 캐나다의 곳곳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비록 젊은 나이에 테리 폭스는 갔지만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길고 위대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전을 하며 사는 삶은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작은 웃음이지만 매일 매순간 웃는 웃음의 삶도 아름다운 도전이다.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것이 웃음이기 때문이다.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