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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 현장의 비극, 방어적 진료의 그림자와 필수 의료의 몰락
  2025-12-12 15:23:46 입력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참극은 의료 인력 부족과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생명 안전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고등학생 사망 사건처럼 긴박한 순간에도 119구급대가 수십 차례 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어야 하는 전화 뺑뺑이 현실은 국민에게 깊은 불안과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을 발의하며 응급실의 사전 고지 의무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사제 도입을 서두르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 역시 지역의사제 찬성이 77%에 달하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모든 대책에 대해 직역 이기주의 기득권 논리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응급실 문 앞에 구급차가 줄지어 대기하는 새로운 기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지역의사제에 대해서는 총력 투쟁을 예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을 단순한 기득권 수호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깊은 내면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방어적 진료(Defensive Medicine)의 확산입니다.

202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려진 한 판결은 필수 의료 현장의 의사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전국에 50명뿐인 소아외과의가 없어 일반외과의가 장이 꼬인 아기를 수술했으나 결과적으로 장기 손상이 발생했고, 법원은 의사에게 무려 10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소아외과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나섰던 의사가 막대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의료 현장에 헌신과 용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드라마 속 ‘최인혁 교수’처럼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위가 경찰 수사, 형사 구속, 수십억원의 민사 소송으로 이어져 개인과 가정이 파탄 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필수 의료와 응급 진료는 본질적으로 생명을 다루기에 실패의 위험이 높고, 그 결과가 부정적일 경우 환자 측과 사회는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과잉 생산된 변호사들로 인해 의료 소송이 새로운 법률 시장으로 대두되고, 경쟁적인 형사 소송 진행이 잦아지면서 의사들은 더 이상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인정받기보다 ‘잠재적 가해자’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고위험·저수가의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안전하고 고수익인 피부·미용 분야로 이탈하는 현상(피안성 쏠림)을 더욱 부추깁니다. 응급실 뺑뺑이와 필수 의료 붕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과 함께 필수 응급의료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현재의 문제 해결 논의는 주로 의대 정원 증원, 지역의사제, 응급실 수용 의무 강화 등 공급과 규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대책이 필요하지만, 이는 의료진이 칼을 들 용기를 내도록 하는 근본적인 환경 변화 없이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고의적 살인이 아님에도 형사 처벌(특히 구속)을 하고, 엄청난 소송 가액을 부과하는 현행 사법 시스템은 필수 의료 종사자들을 떠나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조치가 시급히 요구됩니다. 필수 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 소송 면책 특례 도입을 제안합니다. 고의가 아닌 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당시 최선의 의학적 판단과 노력을 다한 경우에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형사 처벌을 면제해야 합니다. 

생명을 담보로 한 형사 구속 수사는 ‘의료 행위의 만행’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민사 소송은 다툴 수 있더라도, 필수 의료 영역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의료 사고에 대해 국가와 공공기관이 배상 책임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고, 의사의 과실을 따지기 전에 피해 환자에 대한 신속한 구제를 우선해야 합니다. 막대한 소송 가액의 부담을 의사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행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합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헌신’을 우선 가치로 인정하는 사회적, 사법적 인식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그 어떤 직역의 이해관계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의료계 역시 직역 이기주의를 버리고 사회적 책무에 충실해야 하지만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는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안전망을 구축하여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헌신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형사 소송이 겁이 나서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없도록 필수 의료 현장의 의사들을 사법적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이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의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열쇠입니다.

양주예쓰병원 원장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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