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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자 법원 건물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식사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사람들 사이로 기자회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몇몇은 걸음을 늦추거나 현수막을 읽으며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대부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그대로 지나갔다.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던 9월10일, 법원 앞에서는 전국 235개 단체 대표자들이 참여한 연합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 앞에는 이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판사님. 세계평화활동으로 국위선양을 하신 이만희 대표님께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들은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이만희 대표의 고령과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현수막에는 ‘선처’라는 분명한 요구가 적혀 있었지만, 현장에서 강조된 또 하나의 메시지는 “다름을 인정하라”였다. 종교와 생각, 입장이 다르더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최소한의 기준까지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였다.
인터뷰에서는 이를 보다 가까운 질문으로 풀어냈다. “95세입니다.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기자회견 주장에 대한 찬반을 잠시 내려놓자 질문의 무게는 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사건 당사자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모나 조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원 앞에서 ‘나이’는 그렇게 법률의 문제와 인간의 노년을 이어주는 질문이 되고 있었다.
◆법·고령사회·봉사·평화
다른 경험에서 나온 하나의 호소발제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주형 대한효충의연합회 본부장은 초고령자의 경우 건강 상태가 갑작스럽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95세의 하루는 결코 평범한 하루가 아닙니다.” 그는 구속하지 않고도 재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함께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의는 엄격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전직 지방의회 의장인 김모씨는 초고령사회라는 현실에 주목했다. 고령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달리할 수는 없지만 연령과 건강 상태, 치료 필요성 등 개인이 처한 상황을 살피는 것 역시 사법절차에서 고려할 부분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씨는 “엄정한 법 집행과 인간에 대한 배려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진관 아리수환경문화연대 회장은 신천지자원봉사단과 함께했던 하천 정화와 환경 캠페인, 재해복구 현장을 떠올렸다. “종교와 진영을 떠나 손을 맞잡고 하천을 청소하고 재해 현장을 함께 정리하던 많은 이들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넘어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양훈 ‘기자들의 눈’ 대표는 2023년 이 대표의 제32차 평화순방 당시 필리핀을 방문했던 경험을 전했다. 김 대표는 당시 민다나오에서 평화교육과 종교 간 대화 등의 활동을 직접 봤다고 설명하며 “저는 이러한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덕수 북방민족나눔협의회 전 회장은 구속 필요성에 초점을 맞췄다. “과연 반드시 구속이라는 방식이어야 합니까?” 장 전 회장은 수사나 재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구속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다시 살펴봐 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발제자들의 출발점은 법의 가치, 고령사회, 봉사 경험, 해외 평화활동 등으로 달랐다. 하지만 재판부에 초고령자의 구체적인 사정을 함께 살펴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에서는 목소리가 모였다.
◆멈춘 사람과 지나간 사람 사이에 남은 질문
발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법원 앞의 일상은 평소처럼 흘렀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기자회견장 곁을 오갔다. 현수막을 바라보며 걸음을 늦추는 사람이 있었고, 잠시 서서 발언을 듣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멈추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바쁜 점심시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기자회견 앞을 지나가는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며 현장에서 나온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다.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지금은 모르는 사람의 사건이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어느 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나 자신이나 가족이라면 같은 장면도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답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법의 원칙을 먼저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고령자의 건강을 떠올릴 것이다. 그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지킬 것인지를 고민할 수도 있다.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다만 이날 법원 앞에서 던져진 질문은 특정 종교나 한 사람의 문제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구름이 드리운 법원 앞에서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향했다. 잠시 멈춰 섰던 사람도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현수막도, 마이크도 사라진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았다. 오늘 타인의 일로 지나친 일이 언젠가 나 또는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그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바라보게 될까.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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