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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목사의 눈물
  2007-07-13 10:23:37 입력

권 목사는 휘청대는 발걸음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교문을 나섰다.
‘비슷한 일을 한 두번 겪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요즘 애들 너무 기가 막힌다.’
그는 입안이 사막처럼 아삭아삭 타 들어가는 듯한 심한 갈증을 느끼며, 길가에 서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한개 꺼내들고 체면불구하고 고개를 한껏 뒤로 꺾은채 목구멍 속으로 쏟아 부었다. 학생들이 그런 권 목사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아흐! 진짜로 교목 도저히 못해먹겠네!”
권 목사는 그렇게 가슴으로 비명을 질렀다.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긴 즉슨, 여중 2학년 학생이 고3 남학생과 놀아나다가 임신을 했다는 기막힌 하소연을 담임 여선생한테 얻어들은 권 목사가 그 여학생을 조용히 교목실로 불러들였다.

“그래, 그 남학생하고는 우예 알게 됐노?” “...”
“좀 자세하게 자초지종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묻는기다.” “...”
“그 남학생하고는 운제부터 알게 된기고?” “크리스마스 때요.”
“어데서 만났노?” “노래방에서요.”
“...”

의외로 여학생은 권 목사의 묻는 말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또렷또렷하게 대답했다. 권 목사는 여학생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눈썹이 진하고 눈이 큰데다 콧날이 오똑한 게 꽤 예쁘게 생긴 학생이었다.

“부모님은 다 계신가?” “아버지만요.”
“엄마는? 돌아가셨나?” “아뇨!”
“그라모...” “도망갔어요.”
“와 도망갔노?” “일하던 오빠랑 눈맞아갖고 도망갔어요.”
“너들 집에서 뭔 장사하나?” “술집요.”
“술집? 술집도 술집 나름이제. 먼 술집이고?”
“언니들이랑 오빠들 데리구 양주나 맥주 팔아요.”
“...”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대답하는 쪽쪽 혓바닥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간간이 권 목사를 건너다보는 눈초리가 여간 당당하고 도전적이 아니었다. 권 목사는 그 여학생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온몸에 와사삭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그라모, 오빠나 동생도 있나?”
“오빤 깜빵에 들어갔고, 5학년짜리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오빤 무슨 죄로 감옥에 갔노?” “옆집 아줌마 낮잠 자는데 들어가 성폭행했대요.”
“...”

권목사는 주전자에서 물을 한컵 따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미지근한 게 안마신만 못했다.
“그라모 집안 살림은 누가 하노?”
“웬 여자가 매일 와서 일해놓고 가요.”
“파출부?” “아뇨.”
“그라모?” “아빠랑 그렇구 그런 사인가봐요.”

권 목사는 또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세상 놈덜은 이럴 때 담배를 죽어라 피워대든가 쫓아나가 목구멍에다 쐬주병을 거꾸로 쳐박고 나발을 불어델텐데...’
“그래, 담임선생님은 뭐라카드노?” “병원에 가재요.”
“...”

담임 선생의 의도는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수술을 시킬 참이었을 것이다.
“그래 니는 우째하겠다 했노?” “아무 대답 안했어요.”
“와?” “...”
“와 아무 대답도 안했노?” “오빠하고 의논해 봐야죠.”

여학생이 또 권 목사의 눈을 대들듯이 째려보며 말했다.
“그럼 이런 문제를 저 혼자 결정하란 말에요?” “...”
권 목사의 입에서 단숨이 팍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럼, 니는 그 오빠가 아를 낳으라꼬 하모 낳을끼가.” “...”

권 목사가 그만 애원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바라, 니 말이다. 담임 선생님 말씀에 따르는 게 백번 좋겠다. 안그르나?”
순간 권 목사는 자신의 눈을 찌르듯 쏘아보는 여학생의 눈빛이 예리한 송곳 끝처럼 따갑다고 느꼈다.

“목사님.” “와?”
“목사님은 성경 시간에 입버릇처럼 말씀했잖아요. 살인하지 말라구요. 뱃속에 있는 아일 죽이는 게 살인 아닌가요?”
순간 권 목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 그기야 우째 그래 얘기가 되노?”

여학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듯이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놓고 있었다. 궁둥이가 새까만 커다란 왕벌 한마리가 창틀에 매달려 웽웽대고 있었다. 권 목사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엉뚱한 놈, 꽃이나 찾아갈끼제...”

여학생은 여전히 창밖으로 얼굴을 향한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옆 얼굴이 파리하게 여위어 보이는 것이 안타깝도록 측은해 보이긴 했지만 괘씸스럽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건 처음보다 훨씬 더 했다. 권 목사가 혀끝으로 타는 입술을 간신히 축이면서 입을 열었다.

“니, 몇 개월째고?” “네?”
“몇 개월 됐나 말이다.” “뭐가 몇 개월요?”
“아 가진지가 몇 개월째 되나 말이다.”
여학생이 권 목사의 얼굴에다 내뱉듯이 탁 쏘아붙였다.
“목사님두 참, 그런 걸 하면서 횟수를 세어봐요? 날짜 따져봐요?”
“...!”

권 목사는 여학생을 교실로 돌려보내놓고 교목실을 도망치듯 뛰쳐나와 지금 이 꼴로 헉헉대며 서있는 모습이었다. 산골에 묻혀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인 김가다네 집 쪽으로 달리는 승용차 속에서 권 목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님, 내 고마 목사 그만 둘랍니다.”

그러나 그날 밤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교회의 강대상 뒤에 고꾸라진 권 목사는 그 밤 내내 콧물 눈물 쏟으면서 이렇게 꺼이꺼이 울었다.
“아부지요, 잘못했십니더. 학생들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 보겠심니더. 용서해주이소.”
<끝>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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