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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02 10:19:51 입력

김가다의 추억 속에 선명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개는 딱 두 마리 밖에 없다. 한 마리는 덩치가 송아지만한데다 얼굴이 마구 주물러 놓은듯이 험상궂은 뚱이라는 개와 체구는 작아도 한번 붙어보자는 듯 눈만 뜨면 뚱을 노려보며 이빨을 하얗게 까뒤집곤 했던 토종 진돌이 딱 두 마리 뿐이다. 뚱은 언제나 집 뒤곁에 집채만큼 쌓아놓은 솔잎나무 속으로 터널을 파고 기어들어가 동그렇게 제 집을 짓고 살았었는데 김가다 부부가 잠이든 한밤중에 귀곡성 소리에 언뜩 선잠을 깨어보면 녀석의 코고는 소리가 천둥이 굴러가는 소리를 냈었다.

언젠가 대살년이 졌던 그 해 여름, 김가다네 건너마을에 잡종 진돗개 한 마리가 온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닭이나 오리 등을 마구 물어죽였다. 게다가 사람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통에 놈은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미친개가 어느날 김가다가 뒷산에 풀어놓은 점박이 돼지를 공격했을 때 길길이 날뛰던 뚱이 급기야는 굵은 쇠줄을 끊고 내달아 그 나쁜개를 한입에 목을 꺾어버렸었다. 그때 뚱은 온 마을 사람들에겐 영웅이었다.

하지만 뚱의 그 꼴을 아니꼽게 여기고 있던 진돌이가 드디어 어느날 한낮 푸나무 서리에서 뚱과 한판 죽자사자 맞붙고 말았다. 진돌이는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뚱의 이마에 이빨을 꽂은채로 대롱대롱 매어달리면서도 죽어라 놓지 않았다. 만약에 진돌이가 뚱의 이마를 놓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하마같은 뚱의 입속에서 대가리째 부서질 판이었다.

화급해진 김가다가 양동이로 물을 연거푸 퍼부어대자 겨우 두 녀석이 떨어졌었다. 1997년 겨울, 김가다가 사기사건에 휘말려 땅과 집을 경매로 빼앗기고 그 마을을 떠나온 후 아파트 생활을 하고부터는 개를 기를 장소도 없었지만 어디 개를 키워볼 엄두도 못냈었다. 김가다는 애완견을 아파트에서 기르는 사람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언젠가 전철에서였다. 예쁜 아줌마가 애완견을 품에 안고 그의 옆에 앉았다. 순간 그는 훅 불쾌한 감정이 가슴에 일었다.

“젠장, 하필이면 내 옆에 앉다니...뭐야 진짜 개를 안고 전철을 타다니.”

그렇긴 해도 모처럼 얻어앉은 자리를 일어서기도 뭣해서 잠자코 신문을 펼쳐들었다. 전철이 청량리역에 가까워 질 때였다. 아주머니가 김가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저씨, 얘가 아저씨 얼굴이 멋있나봐요. 아저씨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네요.”

김가다의 시선이 그녀가 안고 있는 개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눈망울이 선명하게 빛나는 강아지가 김가다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한마디 던지듯 말했었다.

“네, 강아지의 눈이 아주 맑고 깨끗하군요.”

그리고 다시 신문에다 시선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조금 후 다시 그 여자가 김가다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저씨, 얘 머리좀 한번만 쓰다듬어 주심 안되요?”
“...!”
“한번 쓰다듬어 주세요. 아저씨 얼굴을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김가다는 그녀의 말에 마지못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강아지가 혓바닥으로 김가다의 손을 핥아주었는데 순간 김가다는 온몸에 소름이 와삭 돋는 느낌이었다.

“부모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성심껏 모셔봐라. 얼마나 복을 받겠어...”
어쨌거나 김가다는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대우도 그렇게 좀 해봐라. 이웃간에 얼마나 화목하고 좋아지겠어. 뭐? 개 병원에 한번 데려가는데 몇십만원 들었다고?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야 진짜?”

하여튼 김가다는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며 그걸 신줏단지 모시듯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꼴불견이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태현(배우)이네 집에 갔을 때였다. 그 집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똥오줌을 제자리에 가서 볼뿐아니라 밥을 줄때도 꼭 짤막하게 기도를 끝내고 ‘아멘’ 소리가 떨어지기 전에는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음식에 입을 대지 않았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어떻게 저렇게 교육시켰냐고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머리를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

“쟤들 교육시키느라고 체중이 5kg이나 빠졌어. 머리털이 몽창 빠질지경이었지 뭐니.”
그러면서도 김가다는 속으로 그 여자친구를 못마땅해 했었다.
“어느새 망령이 났냐? 개한테 그렇게 정성을 쏟아붓게.”

그런데 어느날 가깝게 지내는 신 전도사님이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김가다의 마누라가 운영하는 한복가게로 들어섰다.

“누가 날더러 기르라고 주셨는데도 우리집에서 기르면 똥개팔자 될 게 뻔해서...”

마누라는 뛸듯이 기뻐했지만 김가다는 영 탐탁치가 않았다.

“똥오줌을 아무데나 마구 쌀텐데 그걸 무슨 수로 길러? 며칠 못가 딴사람에게 줄 걸 갖고...”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태현이 엄마처럼 몇 달씩 두고 머리털이 빠지도록 교육시키지 않았는데도 ‘제리’라고 이름붙인 강아지는 ‘똥’ 하면 제자리에 가서 똥을 누고 ‘쉬’ 하면 제자리에 가서 오줌을 싸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김가다가 작은 뼈다귀를 물려주곤 하는 재미에 가끔씩 꾀똥도 싸는데 그것이 또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가게에 데리고 가서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도 마누라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앙글방글 아양을 떨었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서도 짜증스레 짖지도 않을뿐더러 손님들이 옷을 갈아입어볼 동안 호도갑도 떨줄 모르고 잔드근히 의자에 업드린 채 없는듯 있는듯 꼼짝도 않는다. 식구들 중 누구 하나라도 안보이면 방마다 돌아다니며 찾느라고 눈빛이 보석처럼 반짝였고 밤에 잠잘 때에도 침대에 올라와 네 다리를 쭉펴고 마음껏 행복해하며 잠을 자는 모습이 어찌나 귀! 여운지 김가다도 아내도 넋이 빠져 버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미운 곳이라곤 한점도 없었다.

“참 희한한 녀석이 우리집에 왔네. 털도 빠지지 않구 말이지.”

제리녀석이 집에 오고난 뒤부터 마누라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실 날이 없는 것이 김가다는 너무도 기뻤지만 녀석의 재롱에 집안에 웃음소리가 떠날 날이 없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김가다가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은성이 녀석도 외국에 유학가 버렸지, 은혜는 곧 결혼할테지, 마누라랑 나만 단둘이 이 넓은 집에서 너무 쓸쓸할 것 같으니까 하나님께서 신 전도사님을 통해서 선물을 주신거야.”

그런데 제리가 집에 오고나서부터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김가다의 마음이 싹 달라져 버렸다. 예전엔 안면치레 정도였던 이웃에게 없던 말을 은근히 건네기도 했다.
“강아지의 눈이 너무 예쁘군요. 털두 너무 예쁘고...몇살이에요? 암놈입니까? 함께 데리고 자요? 물론 똥오줌을 가리겠죠?”
김가다가 그렇게 관심을 보이면 사람들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활짝 열렸다.
“딸아이가 시집가고 없어도 제리녀석 때문에 덜 쓸쓸하게 생겼어...”

하지만 김가다의 뇌리 속에는 그 옛날 솔숲정이 속에서 우렁차게 코를 골던 뚱과 진돌이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다. 뚱과 진돌이를 생각할 때마다 김가다의 눈두덩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은 복처리로 삶의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허드재비 시절에 되먹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정직하고 충직했던 녀석들의 열정이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 뜨겁게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은 세월에 뚱을 꼭 닮은 녀석과 진돌이를 구해서 기르게 될 것이라고 김가다는 굳게 믿었다.

“요즘 무간지옥을 향해 나라비선 인간들이 하다못해 개한테라도 삶의 지혜 한줄쯤 배웠으면 좋겠구먼...”  <끝>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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