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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박이
  2008-01-11 09:48:41 입력

2007년 12월28일. 그날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장돌뱅이 행차를 나섰던 김가다는 전철 속에서 황당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전철이 방학역을 마악 출발했을 때였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누군가가 독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았으나 이내 무관심한 표정이 되어 그러거나 말거나 침묵 일색이었다. 김가다는 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독설이거니 그냥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나름대로 흘려보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쓰벌눔. 지금쯤 깜방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될 놈이 대통령에 당선되갖고 활개를 치고 댕겨? 나라가 어찌될려고 그딴 사기꾼 놈이 대통령에 당선된단 말여 쓰벌.”
“...!”“뭐? 무조건 이북에다 퍼주지는 않겠다고? 껌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쓰벌. 아아니 이북에다 퍼주지 않으면 김정일이가 뭐 눈이나 껌뻑할 것 같어?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이북에다 그만큼이라도 퍼주었응께 지금 우리나라에 전쟁이 안 터지고 다덜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녀? 그래 그걸 모르고 무조건 퍼주기만 했다고 나발들 불어쌌고 말이지.”
“..."

“빙신 같은 새끼덜. 그래 동영상에 BBK와 분명히 관련이 있다고 TV에서 나왔는데도 그놈헌티 도장을 찍어준 한심한 새끼덜. 대가리에 구더기만 바글바글한 새끼덜.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을 사기꾼놈을 대통령에 당선시켰응께 어디 한번 어떻게 되나 두고봐라 쓰벌. 고생 썩어빠지게 할꺼다 쓰벌.”
“...”

김가다가 사람들 틈 사이를 기웃거리며 독설을 퍼붓고 있는 사나이의 얼굴을 찾았다. 그는 머리가 반백이었고 깡마른 체구에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몸이 성치 않은 모양인지 오른쪽 손에 쥐고 있는 굵은 나무지팡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

“쓰벌눔이 머 교회 장로라는데 교회 장로치고 도둑놈 아닌눔 있어? 장로, 목사 그놈덜 다 도둑놈들여.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 죄 말아먹는 놈들이여. 교회 다니는 눔덜 눈깔에 해태껍질이 씌었지 그래. 쎄가 빠지게 돈 벌어갖고 그래 헐짓이 읍써서 목사들 아가리에 죄 갖다바쳐? 빙신 육갑 허는거지.”
“...!”

드디어 김가다의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창동역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가다가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툭 한마디 던졌다.

“보셔! 아저씨 뭐 굶었어?”
“뭐셔? 당신 날보고 시방 굶었냐고 말항겨?”
“그럼 내가 지금 누굴 보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아저씨 보고 하는 말이지.”
“굶긴 왜 굶어! 아침에 마누라가 끓여준 조기찌개에다 쏘주 한병까지 곁들여 마시고 나왔어. 내가 굶고 사는 놈처럼 보여?”

“며칠 굶지 않았으면 왜 사람들이 많은 전철 속에서 게걸게걸 허깨비 씐 놈처럼 말같잖은 소리 늘어놓냐구우!”
“뭐셔? 허깨비? 게걸게걸? 말같지 않은 소릴 늘어놓는다고?”
“게걸게걸이 아님 뭐 주절주절이냐?”
“이런 쓰벌! 내헌티 시비거는 거여 시방?”
“시비는 무슨 시비. 하도 꼴같지 않게 놀구 있으니까 비위가 상해서 한마디 한거지.”

“내 말이 틀렸어. 그럼?”
“네 말? 그거 차라리 똥이라 그래라. 그게 너한테 천생연분으로 딱 들어맞는 말일 게다!”
몸이 성치 않아서 나무지팡이를 짚고 섰는줄 알았는데 사나이가 대뜸 지팡이를 김가다의 얼굴에 바짝 디밀었다.

“별 다섯개 달고 엊그제 빵에서 나온 놈여. 쓰벌눔 죽고 싶어 환장했냐? 어따 대고 시비를 걸어 쓰벌놈앗!”
“빙신! 별은 군대에서 장군이나 다는거지 빵에서 달고 나온 별두 별이라고 자랑허냐? 한심한 눔. 그래두 니 엄마가 널 낳구두 미역국을 먹었을테니 에그...”

순간 사나이가 지팡이로 김가다의 얼굴을 일직선으로 내질렀다. 김가다가 재빨리 그 지팡이를 피하고 오른발로 사나이의 정강이를 힘껏 내질렀다. 사나이가 비명을 지르며 정강이를 붙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김가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사나이의 다른쪽 정강이를 또 내질렀다. 사나이가 지팡이를 전철 바닥에 팽개진 채 털썩 주저앉았다. 김가다가 장돌뱅이 가방의 손잡이를 바짝 움켜쥐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물건이든 가방만큼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김가다의 철칙이었다.

“가방을 잃어버렸다간 마누라한테 쫓겨나지 진짜. 그렇게만 되면 영락없이 노숙자 되는 거야. 진짜루...”
그리고 전철을 내리기 직전 김가다가 아직도 사나이에게 미련이 남았던지 재빨리 몸을 돌려 주저앉아 있는 사나이의 이마에 박치기를 한대 더 들이박았다.

“꽝”
“아고! 골 깨진다아!”

그리고 김가다는 전철에서 훌쩍 내려버리고 말았다. 종로5가에서 내려야 했지만 그냥 동대문에서 내리고 만 것이었다. 사실 선거가 끝났으니 말이지. 정치인 맹박이가 아닌 개인적으로 동병상련을 느낀 나머지 김가다는 오래전부터 맹박이를 좋아해왔다. 맹박이가 비록 김가다보다 여섯살쯤 위이긴 하지만 전쟁의 후폭풍을 거세게 저항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김가다도 맹박이 못지 않게 고생을 밥먹듯 하며 고학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다.

연탄 두장을 사기 위해 엄동설한에 남의 택시 속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자 주면서 받은 돈이 30원이었고 풀빵장수를 하고 싶었으나 풀빵기계 살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방학기간 내내 뚝섬에서 돌을 지고 나르며 노가다판을 누볐었다. 광장시장 쪽을 향해서 장돌뱅이 가방을 끌면서 김가다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약 대통령 후보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유세를 벌였을거야. 국민여러분, 맹박이가 비록 험난했던 고난과 가난의 세월을 투지와 인내로 이겨내고 수많은 신화를 창출했을뿐 아니라 청계천의 기적을 이루어낸 입지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도 맹박이를 존경합니다. 하지만 내일모레면 나이 70이 넘을 늙다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어쩌겠다는것입니까.

그보다는 패기있고 열정이 넘치는 이 김가다를 대통령으로 밀어주시는 게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옳은 선택이 되지 않겠습니까. BBK 사건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판결났습니다. 우리는 법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게도 맹박이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지혜와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고 또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와 석학들이 제 주변에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십시오.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열과 성을 다해 국민을 위해 몸 바쳐 봉사하겠습니다.”

김가다는 벙시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만일 동영이가 그런 식으로 긍적적 유세를 했더라면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뇌리에 매우 감동적인 이미지를 심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광장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오늘 따라 장돌뱅이 가방이 유난히 가벼운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도 박치기를 하도 써먹지 않아서 이마빡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오늘 모처럼 근육이 몸을 풀었기 때문인 듯 했다.
“맹박이가 잘 할거야...”

<끝>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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