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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암 백인걸의 철학사상
백종현(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2018-01-02 15:26:40 입력

휴암 백인걸 선생 탄생 52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움③ <끝>

양주문화원이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선생 탄생 520주년’을 기념해 양주시와 수원백씨 문경공 휴암종중 후원으로 지난 9월1일 양주회암사지박물관에서 개최한 학술심포지움 강연을 정리한다. 학술심포지움에서는 ▲명종·선조조의 정국과 휴암의 역할 ▲휴암 백인걸의 소차류 정론산문 연구 ▲휴암 백인걸의 철학사상 등의 강연이 있었다.

I. 시대와 사상

사상이란 시대의 아들이자 민족의 딸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상이든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되지만, 특정 시대나 특정 사회를 넘어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그 안에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며, 시대에 가장 충실한 것이 가장 오랜 영향력을 갖는다는 말 또한 있으니, 그러한 것이야말로 절실함을 담고 있으며, 절실함보다 더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휴암 백인걸(1497~1579)은 조선시대 연산군 3년에 태어나 선조 12년까지 83세를 살았다. 조선이 건국(1392)하여 1세기가 지나면서 위정자의 관심이 국리민복에서 벗어나 사리사욕에 쏠리고, 국제정세나 인류애보다는 족벌이나 붕당(朋黨)의 이익에 편중되었던 시기이다. 선조 초(1570)에 이미 동서 파당의 조짐을 간파하고 임금에게 “동서(東西) 두 글자가 망국의 화인(禍因)”이 된 시폐(時弊)를 간하는 한편, 자신의 덕성을 힘써 기르고 후학 양성에 정성을 기울인 것은 휴암이 한낱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정도(正道)를 구현하고자 했던 징표이다.

II. 도학(道學)과 휴암의 실천

휴암은 조선 도학의 계통에서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우계 성혼(1535~1598) 및 율곡 이이(1536~1584)를 매개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도학이란 주자(朱子, 1130~1200)가 사서(四書)를 편제하면서 중용(中庸)을 일러 “자사(子思) 선생님께서 도학의 전승을 잃을까 걱정하여 지은 것(中庸章句序)”이라고 주해한 데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바, 이는 송(宋)대 신유가(新儒家)가 계승하는 유교(儒敎)의 가르침, 곧 성리학(性理學)이며, 인륜학(人倫學)이 핵심이다. 그래서 이이는 도학은 “송 나라 때 시작되었다. 도학은 본래 인륜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륜에서 그 리(理)를 다하면 이것이 곧 도학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도학에 관한 휴암의 이론을 체계화할 만한 문헌자료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당시의 임금인 선조에게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의 3서 공부를 권고했고, 조광조의 빼어남을 논하면서 그가 학업에서는 “대학(大學)·소학(小學)·논어(論語)·근사록(近思錄)으로써 우선을 삼았고, 실천에서는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으로써 근본을 삼았다”고 기술했으며, 그 자신은 이에 더하여 주역(周易) 등의 고전과 함께 주돈이(1017~1073)의 태극도설(太極圖說) 및 정주(程朱)의 서책들을 늘 좌우에 놓고 독서하며 궁리(窮理)했다는 사실은 그의 학문의 대강이 신유가와 부합할 것임을 짐작하게 하니, 휴암의 철학사상을 성리학의 얼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겠다.

1. 본성과 법도

유교는 하늘/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가 조응 내지 합치함을 말하거니와, 신유가는 더 나아가 인간의 이치가 곧 하늘/자연의 이치임을 역설한다.

“하늘의 도가 변화하여 각 사물이 본성과 본분을 갖추는 것”(『周易』, 乾爲天)이니, 하늘 아래에 있는 만사, 곧 자연 만물은 저마다 일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되, 그러한 일정한 성격은 자연 곧 하늘에서 받은 것이고, 그런 만큼 각각의 사물의 그 본래적인 성격은 하늘의 이치와 일맥상통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연 중의 일물(逸物)인 인간을 포함하여 각각의 사물은 하늘이 정한 바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그 지시명령을 따름이 각 사물의 법도이다.

그러니까 하늘이 지시하는 법도를 따름에 있어서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에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이는 하늘이 정한 바에 따른다. 유가는 이런 상태를 순리(順理)라 하고, 이치에 어긋나면 고난이 초래된다고 본다. 또한 “천지의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이 순조롭게 생겨나는 것”(『周易』, 繫辭 下5)이니,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와 하나의 이치에 따르는 것으로서, 어느 한 사물만 떼어서 이치를 논할 수는 없다.

하늘의 이치나 하늘이 낳은 개별 사물의 이치는 본시 하나이다. 사물마다 특성이 있어 저마다 알맞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이치는 본래 일관되어 있다.” 자연의 생성변화의 이치가 도이니, 그에 부합하는 운행은 선이고, 그 생성변화를 이루어가는 것이 본성인 것이다.

2. 하늘의 도 즉 인간의 도

하늘의 이치가 엄존하지만, 그러나 그것의 실현은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천리가 있을 따름”이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까닭은 특별히 인간만이 천리를 온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는 다름 아닌 인간의 도에서 찾을 일이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는 서로 조응하며, 만물이 자연에서 나오되, 그 만물을 이끌어가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유가의 기본적인 우주관이자 인간관이다.

그런데 자연물의 하나인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는 것인가? 자연물이 자연의 이치에 따름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인데, 굳이 자연의 이치에 부합함에서 선(善)을 보고, 순리(順理)를 말할 것이 무엇인가? 유가는 여기서 본성과 자연 사이에 ‘마음(心)’의 작용을 두어 인간의 특수성 내지 매개성을 본다. 사람은 마음을 다해 자신이 품수한 자신의 성격(본성)을 배양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최고 원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도학 곧 성리(性理)의 학문

“마음이란 사람의 신명이니, 이로써 모든 리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성은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리요, 천은 또 리가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체 아님이 없으나, 리를 궁구하지 않으면 가리어진 바가 있어 저 마음의 양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전체를 지극히 하여 다하여 하지 않음이 없는 자는 반드시 리를 궁구하여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이니, 이미 그 리를 알면 따라서 나오는 것, 즉 하늘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孟子集註』, 盡心章句 上1)

그러므로 사실 하늘의 도, 자연의 이치는 이미 ‘저절로 그러한 바’ 즉 자연이라기보다는 자연에 응하는 인간의 자세에 있다. 그러니까 하늘과 인간의 관계는 하늘은 주고 인간은 받기만 하는 ‘천인수수(天人授受)’의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이룩해가는 ‘천인상성(天人相成)’의 관계이며, 더 나아가 오히려 인간이 능히 하늘을 이끌어 가는 ‘인능감천(人能戡天)’의 관계이다.

그래서 유가에서 말하는 ‘하늘과 사람의 하나됨(天人合一)’이란 하늘과 사람이 힘을 합(天人合德)하고, 하늘과 사람이 서로 참여함(天人相參)을 함의한다. 그러므로 유가에서 말하는 사람(人)은 한문 글자 그대로 “천지생물 가운데 가장 귀한 자”로서 “천지의 실리이며 음양의 교합이고, 귀신이 응합된 것으로 오행의 가장 빼어난 기운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유가의 이해를 정리해 보자면, 사람은 자연적 본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정(情)으로 표현되며, 대상을 만나면 욕구로 분출된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이를 다스리는 능력, 곧 사려분별력이 있으니 그것이 마음(心)이다.
 
4. 휴암의 실천

정몽주(鄭夢周)-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로 이어 내려오는 조선 도학의 학통을 잇는 휴암은 그 덕행에서 진정한 도학자임을 보였다. 휴암이 남평(南平) 현감, 양주목사 재직 시에 백성들을 구휼하고 교육에 힘써 ‘문풍(文風) 선정(善政)’의 모범을 보였고, 소년 고경명(1533~1592)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후대했으며, 55세(1551)에 맞은 17세 제자 성혼을 그 학문의 탁월함을 칭찬하면서 외우(畏友)로 대접할 만큼 겸손하고 허심탄회했다는 증언은 그의 통찰력과 근실한 마음가짐, 학문하는 태도를 엿보게 한다.

또한 임금에게 당대의 현인인 퇴계 이황(1501~1570)을 “지성(至誠)으로 대우”할 것을 권고한 것은 세태를 올바르게 읽는 식견과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서의 공명정대함의 한 표현이라 할 것이며,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면서 일찍이 마음을 바로함으로써 대본(大本)을 삼지 아니함이 없었다”면서 군주의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일깨운 것은 치국의 근본을 밝힌 것이다.

휴암이 “외직에 나가서는 열심히 학교를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데 성력(誠力)을 기울였고, 조정에서는 곧은 말과 당당한 조행(操行)으로 기강을 바로잡으려고 애썼다”는 증언 등은 휴암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학 정신을 실천에 옮겼음을 말하는 것이다. 도학의 참 의미는 진실한 수신(修身)과 안민(安民)에 있으니, 휴암은 과연 참다운 도학자였고, 그래서 당대에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표로 남아 있다.

2018-01-02 15:32:30 수정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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