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일 의정부시에 한국기원 이전과 바둑 전용 경기장이 건립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년 전 추진됐던 화성시로의 이전이 무산되고 의정부시의 ‘바둑 메카 시대’가 열린 것이다. 900만 동호인을 보유한 인기스포츠 바둑의 본원이 의정부로 이전하니 환영하고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바둑의 기원은 중국 요순시절까지 올라가고 경기나 게임을 넘어 정신을 연마하는 도(道)로 승화까지 하는 고차원의 정신스포츠이며, 옛날 신선들의 바둑 구경을 하다 집에 와보니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전설이 있듯 참으로 재미있는 두뇌스포츠이기도 하다.
이렇게 연륜이 깊은 바둑에는 사자성어도 많고 바둑만의 독특한 용어도 많은데, 그 중에 호구(虎口)와 자충수(自充手)라는 말이 있다. 호구는 상대편 바둑 석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데 그 속에 돌을 넣으면 영락없이 잡아먹히기에 이 말을 바보라는 비속어의 뜻으로 쓰고 있고, 자충수는 자신에게 이롭게 하려는 행위가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 사용되는 말로 실생활에도 자주 쓰인다.
바둑은 몰입하다 보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볼수록 무궁무진하고 매력적인 두뇌스포츠다. 최근에는 이세돌이라는 신세대 프로기사가 한국 바둑계를 평정하고 인공지능 알파고와 벌인 초유의 승부는 전세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승리를 염원했지만 1승4패로 인간이 컴퓨터에 진 것보다 ‘신의 한 수’로 컴퓨터를 인간이 이긴 역사적인 1승을 우리는 확실히 기억한다.
이토록 유래가 있고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한국 바둑의 본산이 우리 의정부로 둥지를 옮긴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럽고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경기도가 행정·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한다니 의정부의 경사임에 분명하며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시 집행부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의정부시민의 입장에서는 환영도 하지만 인근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꽤 실망스럽고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 또한 심상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유치과정을 얼마 전까지도 잘 몰랐고, 시 집행부가 TF팀을 운영하면서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거의 일사천리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한국기원이 들어올 예정지는 구 600기무사가 있었던 부지로 당초 각각 건물 한 동씩 노인복지관과 SOC생활체육시설이 들어설 계획으로 알려져 있었다. 건축비용은 노원구와의 경계조정으로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약 300억원으로 추진한다는 소문 또한 들리기도 하였다.
특히 호원권역에는 노인복지관이 없었기에 지역주민들과 어르신들은 호원노인복지관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당초 계획이 바뀌었다. 바둑 전용 경기장과 주차장이 주된 내용이 되고 지역숙원사업이던 노인복지관과 주민생활시설이 부차적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협약식 때 발표한 주된 내용은 경기도지사 발언으로써 건축부지와 건축비용을 의정부시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협약식은 끝났지만 의정부시민 입장에서는 반드시 사전에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 돈이 없어 재난소득도 가장 적게 지급하여 시민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린 의정부시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이며, 향후 시설운영비용 부담은 또 얼마나 되는지, 건물사용 계약조건은 어찌 되는지, 갑자기 변경·축소 운영되는 노인복지관과 체육시설은 지역주민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지, 만일 부족하다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등을 시 집행부는 투명하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이전 관련 시 부담 총 비용은 대략 400억원 수준으로 분담계획은 국비 120억원, 도비 50억원, 시비 230억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국내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의정부시가 큰 규모의 시비를 지역 국회의원들과 협의도 없이 어떻게 마련할지 조달방법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또한 수탁기관이 될 한국기원 측은 무엇을 얼마만큼 부담하는지, 바둑 전용 경기장은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인지 등 중요한 약정조건을 공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편, 한국기원을 유치하여 의정부시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국내 바국의 메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함께 주민에게는 바둑교육을 하고 홍보, 일자리 창출, 경제적 효과라고 설명하지만 그러기엔 논거가 다소 불충분해 보인다. 일부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용역사의 비용편익분석 결과는 0.5 이하로 경제성이 우려되며 따라서 의정부시에 한국기원이 존속하는 한 끊임없이 일정 규모의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의정부시는 오랫동안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고통을 감수해 왔기에 돌려받는 군공여지는 민관이 소통하여 주민의 희망 여론이 수렴된 사업이 추진되길 바랐다. 보기에는 화려하고 좋아보이지만 실질적 고용을 창출하는 4차 산업단지를 유치하거나 주민이 진정 필요로 하는 눈높이에 맞는 주민편의사업이 추진되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번 바둑 전용 경기장 건립사업은 추진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며 또한 주민 소통과 공개적이고 투명성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라도 시 집행부는 본격적인 이전 추진에 앞서 재원 조달방법이나 대안을 주민들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과 충분히 얘기를 나누며 투명하게 재조정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한국기원 이전도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주민 염원도 원하는 대로 실현되는 상생의 결과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이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이 이뤄지길 소망하며 바둑판 위에서 자충수를 두거나 스스로 호구가 되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