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7세의 한 소녀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협연을 하였다. 긴 금발에 키가 175㎝인 그녀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무대에 등장하여 흰 치아가 훤히 드러나는 미소를 지으면 관객은 그때부터 마법에 걸리기 시작하였다. 자리에 앉아 지휘자와 눈빛을 주고 받은 후 첫 음절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며 관중을 흡수해 버렸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감수성을 내뿜으며 몸을 좌우 앞뒤로 흔들다가 허공을 향해 황홀경에 빠진 듯 연주할 때면 관중들도 혼이 빠진 듯 그녀의 연주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 버렸다. 연주 중간 중간에 첼로줄이 끊어지는 것은 그녀의 열정을 나타내는 퍼포먼스였다. 그녀가 연주한 곡은 엘가의 첼로협주곡이었다. 이 연주로 인해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영국의 엘가라는 작곡가를 단숨에 알렸고,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일시에 대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실 이 곡은 엘가가 1919년 작곡하여 초연을 했으나 관객의 반응은 싸늘했고 그 후 40년 이상 숨겨진 곡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 이후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진짜 주인을 만났고 이후 엘가는 영국인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엘가의 작품으로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 등은 지금은 누구나 일상 속에서 많이 들어본 곡목일 것이다. 이렇게 대성공의 연주를 한 소녀의 이름은 자클린 뒤 프레였다. 자클린은 영국뿐 아니라 1965년 미국 카네기 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역시 엘가의 첼로협주곡으로 미국인들까지 단숨에 사로 잡았다. 그 후 자클린은 모스크바로 가서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 비치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로스트로포 비치는 자클린을 이렇게 평하였다.
“내가 만난 첼리스트 중 자네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야. 자네는 나보다 아주 더 멀리 나갈 수 있어.” 로스트로포 비치는 자클린이 연주한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듣고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자신의 연주 목록에서 이 곡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첼리스트인 장한나도 최종적으로 로스트로포 비치에게 사사 받았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자클린은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서 큐피드의 화살을 맞게 된다. 그 상대의 이름은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바렌보임은 별로 지명도가 없던 인물이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출신 유대교인이었는데 그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진 자클린은 망설임 없이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1967년 6일 전쟁 직후 둘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근처에서 갑작스런 결혼식을 하였다. 이 결혼은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에 비교되며 세기의 결혼으로 떠들썩했다.
예식장에는 급하게 날아온 자클린의 부모와 남동생, 이스라엘 수상인 데이비드 벤 구리온, 예루살렘 시장, 국방부장관 등 유명인사들이 총출동하였다. 둘은 여러 차례 협연을 통해 승승장구하였고 언론에서는 “영국의 장미와 이스라엘의 선인장”의 결합으로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칭찬하였다.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베토벤 첼로소나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등 이들의 음반은 지금도 최고의 명음반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자클린이 연주 도중 활을 떨어뜨리고 현을 짚는 손끝의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바렌보임은 그녀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녀를 다그쳐 몰아세웠고 그녀는 진정제와 보드카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바렌보임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실망하였고 그녀의 나약함과 나태함을 끊임없이 지적하였다. 견디지 못한 자클린은 언니에게 도망을 쳤고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28세. 17세에 성인 무대를 치르고 10년을 하늘의 별로 살다가 갑자기 유성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악기 스트라디바리는 그녀의 제자 요요마에게 물려주었다. 남편 바렌보임은 세계 연주를 다니느라 집에 들어오는 일도 없어졌고 게다가 그는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헬레나 바쉬 키로바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다.
하루종일 울리지 않는 전화를 바라보고 자신이 연주했던 음반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자클린은 1987년 10월 바람이 무척 세게 불던 날 42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무덤에 한 번도 찾지 않은 바렌보임은 많은 이들로부터 분노와 비난을 받아야 했다.
‘자클린의 눈물’이란 첼로곡은 오펜바흐가 작곡하였으나 100년 동안 잊혀진 곡이었다. 그러나 독일인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에 의해 발굴되어 당시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위해 헌정한 곡으로, 그는 이 곡의 제목을 ‘자클린의 눈물’이라고 지었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오펜바흐 작곡의 ‘자클린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듣고 있다.
‘자클린의 눈물’을 듣고 있다 보면 영혼이 맑아지며 그녀의 불꽃 같은 인생에 다시 한 번 숙연해진다. 척추 손상에 안면 마비로 고통스런 투병을 했던 그녀,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 자신을 돌봐주던 물리치료사에게 한 번만 안아달라고 했던 그녀,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인사는 “나는 운이 좋아 다니엘을 만났고 그렇게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모두 음반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였다.
자클린의 눈물은 불행한 눈물이었을까? 행복한 눈물이었을까? 인생은 기대한 대로 흘러가는것만은 아니다, 내일은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어음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은 확실한 행복한 날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도 웃어서 행복한 날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