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시 광적면 가납장 입구(왼쪽). 입구 건너편 버스정류장에는 장을 본 할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오른쪽).

“오늘 내린 눈처럼 오늘 장도 대박나야 할텐데요.”

서울, 경기, 인천 등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월24일.
새하얗게 내린 눈길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모여 든 상인들이 분주하게 손님들과 흥정을 한다. 단골도 눈에 띈다.

“나물 안샀어?” “샀어.”
“미나리 몇 단 드릴까? 시금치는 안하세요?”
“언니 뭐 해드릴까요?”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 몫 거든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그거 소 염통? 1만원!”

양주시 광적면 가납장의 풍경이다. 가래비장이라고도 하는 가납장은 양주시청에서 북쪽으로 10여㎞ 떨어진 광적면사무소 앞 가납시장과 공터, 광적농협 골목 등에서 매 4일과 9일 열리는 5일장이다.

가래비는 광적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으며, 조선시대 때 마을 입구 하천(신천) 변에 소시장이 있었는데, 그 하천에 큰 가래나무로 다리를 놓았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마을에 가래나무가 흔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인근 덕정장(2일, 7일)의 3분의 1 규모도 되지 않지만 거기나 여기나 사람 사는 풋풋한 냄새는 다르지 않다. 생선이 펄떡이는 것처럼 인간미가 살아 노닌다. 백석읍 방성리, 연곡리 등지에서도 장을 보러 찾는 곳이다.

“집(국산)에 것(도라지)은 연하고 맛있어. 저건 중국 거야. 뻣뻣해. 야아 밤이 저렇게 커.”
광적면 가납리에서 30여년을 산 정옥희(69, 왼쪽 사진 오른쪽) 할머니가 한 봉에 5천원 하는 도자리 두 봉을 사며 이야기 한다. 중국산은 3천원.

“옛날에는 반나절 장이었어. 지금은 사람이 많이 늘어나 하루 종일 열리지. 저기 농협까지 장이 서는데 오늘은 없네.”

설을 이틀 남기고 열리는 대목 장이지만 눈길이 미끄러워 일부 상인들이 좌판을 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적면은 면사무소 주위로 희망아파트, 주공아파트, 성우아파트 단지 등이 생겨 5천여 세대가 넘고, 가석택지지구와 광석택지개발지구가 조성되면 인구가 1만5천여명 이상이 될 것이기에 5일장 ‘재미’도 더 쏠쏠할 것으로 예상된다.

5년 전부터 형님을 따라 장에 나선 박영일(34, 오른쪽 사진 오른쪽)씨는 설 대목 장이라 이번에는 도라지, 고사리, 밤, 대추 등 제수용품만 갖고 나왔다. 봄에는 상추나 고추 모종, 여름에는 고추, 가을에는 밤 등을 차에 싣고 인근 일산장, 금촌장, 덕정장 등을 다닌다. 내일(1월25일)은 적성장에 간다.

“그제(1월22일) 덕정장에서는 100만원 넘게 팔았어요. 어제 일산장 때는 너무 추워 고생만 했죠. 오늘은 눈이 내려 걱정했는데 날이 풀려 다행이네요. 고향은 파주 법원리에요. 아버지가 모종을 키우는데 모종을 팔 때는 강원도, 김포까지 다녀요. 직장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쉬는 날이 없어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버는 재미가 있어요.”

박씨가 사람 좋게 이야기를 푸는 동안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20여년 동안 돼지 곱창, 소 염통 등 육류 부산물을 파는 조(74) 할머니는 “가납장은 일산장에 비하면 거저(규모가 작다는 뜻)야. 그래도 장사를 할 수 있어 고마워. 장사해서 아이들 다 키우고 지금은 부모 없는 애들을 키워. 젊었으면 좋겠어. 돈 더 벌게”라며 웃는다.

▲ 육류 부산물을 파는 조 할머니(오른쪽)가 외국인 노동자와 흥정을 하고 있다.

이날 설 대목 장을 맞아 장을 보는 주민들에게 ‘경기침체로 인한 저소득 위기가정 도움서비스’ 행정홍보를 펼치던 양주시 주민생활지원과 강호습(52) 과장은 “고향이 백석읍 연곡리인데, 어렸을 적에는 막대기 사탕 얻어먹는 재미로 어머니 손 잡고 가납장에 왔었다”고 말했다.

“벌써 40년 전이죠. 짚으로 계란 엮은 것 들고 가다가 넘어져 혼난 일도 있었고, 장화 구멍 때우러 오기도 했죠. 어려서 그런 지 이 장터가 무척 커보였는데…. 그 때는 다 걸어서 다녔어요.” 강호습 과장이 옛 추억을 회상했다.

장에 들른 김장열 전 광적면 새마을회장(왼쪽 사진)은 “장꾼들은 매일 물건을 팔고 새로 가져오기 때문에 싱싱하다”고 설명했다.

“한가한 날 사야지, 왜 지금 사?”
한 행인이 사람이 많아 복잡하다고 투덜대자 옆에 있던 행인의 부인은 “한가한 날이 어딨어? 사흘이면 설인데 지금 사야지”라고 타박한다.

“쌀떡 8천원 주세요. 2㎏이에요.”
“쪽파 한 단에 3천500원, 버섯 한 펙에 5천원.”
오후의 시장통은 흥정과 손님 부르는 소리로 한껏 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7년 전부터 광적면사무소 앞에서 양말과 붕어빵을 파는 상인. 한사코 이름은 밝히지 않고 성만 알려준 권씨는 “장사가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는 것”이라며 황소처럼 붕어빵을 쉬지 않고 구웠다.

희망이 샘 솟는 듯 잘 생긴 붕어빵들이 방긋 웃는다.

▲ 년 전부터 광적면사무소 앞에서 양말과 붕어빵을 파는 권씨가 돈을 세며 흐믓해하고 있다.

▲ 평상시 같으면 광적농협 앞까지 좌판이 섰을텐데 1월24일에는 눈이 많이 내려 상인들이 들어서지 않았다(오른쪽).

▲ 설 대목 장을 맞아 장을 보는 주민들에게 ‘경기침체로 인한 저소득 위기가정 도움서비스’ 행정홍보를 펼치는 양주시 공무원들(왼쪽). 광적면사무소 주차장은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을 보는 사람들로 늘 만원이다(오른쪽).

▲ 오후가 되자 가납장터에 발 디딜틈 없이 설 손님들이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