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쌀이 아닌 수입쌀이 일반 시민들의 밥상에도 오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식량자급율 5%도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 마지노선이라 여겨졌던 쌀마저도 개방의 파고 앞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대형유통회사 등에서는 국민 정서를 감안해 수입쌀이 들어오더라도 판매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판매가 시작되고 나면 단순한 가격경쟁력 우위에 따라 수입쌀 판매는 늘어날 것이고, 우리 농업기반은 점점 무너져 갈 것이다. 과연 우리 쌀은, 우리 농업은 가격경쟁력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는가?
우리 농촌은 단지 식량생산기지로서 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문화의 공간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농업이 수행하는 비교역적, 공익적 기능은 식량생산보다 몇 배나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논에 담겨 있는 물은 소양강 댐 저수량의 6배에 달하며, 논이 함양하는 지하수 양은 전 국민이 1년간 사용하는 수돗물의 2.7배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논의 식량외적 기능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무심하다.농촌진흥청 연구결과에 의하면 매년 약 9조원 가치의 쌀이 생산되지만 논농사로 인한 지하수 함양, 대기정화, 홍수조절 등 비교역적인 공익기능은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대략 93조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국토의 정원사로, 문화전통과 지역사회의 보존자로, 환경생태계의 파수꾼으로,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 및 식량안보를 지키는 생명산업으로 그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벼는 지구상에 생존하는 식물 중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산소를 공급한다고 한다. 하지만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는 사라지거나 부족해야만 가치가 드러난다. 이 땅의 쌀 역시 그런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와 동구권 몰락으로 촉발된 식량위기 대안을 지속가능한 유기농에서 찾았고, 실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미국의 경제봉쇄도 없고 교역을 통해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싼 식량을 구매할 수 있으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는 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는 지속적으로 달려오지 않고 한 순간에 전면에 드러난다. 우리 농업기반이 붕괴되면 그 때서야 위기는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