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기기사가 건물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다가 감전되었다. 2만 볼트가 넘는 고압전기였다. 왼쪽 발등으로 들어온 전류는 두 팔과 오른쪽 장딴지로 빠져나갔다. 결국 두 팔과 발가락 2개가 까맣게 타버려 절단해야만 했다. “아! 이제 아내와 두 아이는 어떻게 먹여 살리지? 이제 스물 아홉살인데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그는 절망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빈둥빈둥 놀 수밖에 없었다. 노는 것이 심심해서 의수 갈고리에 연필을 끼고 그림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실력이 점점 더 좋아졌다. 어느 날 아내가 그림을 보고 말했다. “당신 그림은 팔 있는 사람이 그린 것보다 더 잘 그려요.”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하고 궁리 끝에 한 대학교수를 찾아갔다. 처음엔 그 교수도 고개를 갸웃했으나 포기할 때까지 한 번 같이 해보자고 승낙을 하였다. 그때부터 그림은 그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 일밖에 할 수가 없죠. 그래서 더욱더 이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남들이 3시간 하면 저는 10시간을 꼼짝없이 앉아서 연습할 수밖에 없어요.”
온종일 연습하고 나면 허리는 빠질 것만 같았고 며칠씩 몸살도 앓았다. 그런데도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자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끊어질 것 같던 허리가 온종일 앉아 있어도 괜찮아졌어요. 이제는 누군가가 내 몸을 움직여 주는 것 같아요. 마음이 정말로 홀가분해졌어요.”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전국 그림대회에서 입상하는 일도 잦아졌다. “저는 팔이 없기 때문에 온몸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다 보니 그 힘이 붓으로 전달되어 화선지에 표현되는 것 같아요.” “장애인이란 꼬리표는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겠죠? 그래서 모든 생각을 그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그림에만 열중했더니 장애인이란 편견에서 해방되고 마음이 정말 편해졌어요.‘
그의 그림 중 하나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려있는 ’세종대왕‘이다. 그의 이름은 팔 없는 의수화가 석창우이다. 1955년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그는 영등포공고와 명지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전기기사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4년 10월29일 기계 점검 중 기계 고장으로 인해 22,900 볼트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12번의 절단 수술을 받은 끝에 두 팔 모두 팔꿈치 윗부분까지 잘라내고 의수를 착용해야 했으며 오른 발가락 2개 역시 절단해야만 했다. 절망 가운데 서울 생활을 정리한 뒤 처가가 있는 전주로 내려가 요양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청소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려 달라고 보챘다. 짜증이 난 아내가 “아빠한테 그려달라고 해봐.” 아이는 아빠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껏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고, 더구나 두 팔이 없는 자신에게 그려달라고 하자 속으로는 당황하였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하기 싫어 ‘그래. 한 번 그려보자’고 마음을 먹고 아들 그림책에 나와 있는 새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렸다.
의수에 연필을 끼고 그리기에 매우 불편했지만 이 그림을 본 아들은 물론 아내와 딸까지 새와 똑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여러 미술학원을 찾아다녔지만 다양한 색으로 표현해야 하는 물감을 짤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래서 먹 한가지로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서예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원광대학교 서예과 여태명 교수를 여러 번 찾아가 부탁했다. 처음엔 몇 번 거절했지만 석창우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을 바꾸어 그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서예를 3년간 익힌 뒤 석창우는 1991년 전라북도 서예대전에 작품을 출품해 입선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한민국 현대 서예대전 등 1998년까지 수많은 서예 공모전에 지원하여 입선, 특선, 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서예를 넘어 다른 시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동양의 서예에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시킨 ‘수묵 크로키’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붓 대신 연필을 의수에 끼우고 크로키를 온종일 연습하였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부터 운동하는 사람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그 특징을 잡아 그리는 연습을 했다. 연필로 그리는 크로키가 익숙해질 때쯤 연필 대신 붓을 끼웠다. 먹에 붓을 곱게 갈아 붓을 적셨다. 이런 식으로 매일 연습한 끝에 그만의 독특한 수묵 크로키 화법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제1호 의수화가로서 수묵 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미쉘콴과 김연아의 스케이트 트리플 악셀 장면, 월드컵 축구장면 등 수많은 수묵 크로키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1999년 9월11일 명지대 총장으로부터 ‘자랑스런 명지인 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무수한 상을 받은 후 2014년 ‘도전 한국인 운동본부’로부터 수묵 크로키 대한민국 최고기록 보유자로 선정되었다.
현재까지 그는 개인전 50여회를 포함하여 그룹전 280여회를 하였고 초중고 교과서 11종에 그의 작품이 게재되었다. 두 팔과 발가락까지 절단해야 했던 절망적인 순간을 이겨내고 세계 최초로 수묵 크로키를 창안해 선보인 석창우의 일생을 바라보며 그의 환한 미소 속에 역시 인생에 절망은 없다는 것을 느껴본다. 인생은 힘들지만 오늘도 웃으며 이겨 나갑시다.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