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년 전 중국의 ‘황제 내경 소문(黃帝內經素問)’이라는 세계 최고(最古) 의학서적에는 신화적 존재인 황제가 기백(岐伯)이라는 의사에게 노령에 관해 배우는 내용이 들어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뼈는 말라 지푸라기 같이 부서지고(골육종), 피부는 탄력을 잃어 늘어지며, 가슴에는 공기가 많아지고(폐기종), 위장에는 통증이 오고(만성 소화불량), 심장에는 답답한 기운이 돌게 되며(협심증이나 만성 심부전증), 목덜미와 어깨죽지가 죄어드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흐르고(요도경색), 피골이 상접해지고(근육손실), 눈은 부풀어 처지게 됩니다. 눈이 옷솔기조차 보지 못하게 되면(백내장) 죽음이 뒤따릅니다. 사람이 병을 이기지 못하는 늙음이 닥쳐오면 그의 삶은 종지부를 찍고 죽게 되는 것이 옵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죽음의 직전에서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직접 당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세계적 성공학의 대가이며 미국 대통령 고문관을 지냈던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이 겪는 6가지 두려움 중 하나로 늙어감을 꼽고 있다.
세계 문화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의 최대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는 노령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란 것은 마치 나뭇잎과도 같다. 무성함 뒤에는 반드시 쇠퇴가 따른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나뭇잎과 같이 무성함 뒤에 찾아오는 쇠퇴를 막을 길 없고 또한 여러가지 질병으로 인한 두려움의 시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이런 노령화는 왜 오는 것일까? 노령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모설(wear and tear theory)이고, 둘째는 유전적 결정론(genetic tape)이라는 것이다. 마모설은 평범한 일상의 환경에서 제 기능을 수행해 내던 세포와 기관이 연속적인 과정 속에 마모되고 파괴되어진다는 설이다. 반면 유전적 결정론은 모든 세포와 기관과 조직이 타고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설정된 시계에 따라 노령화되어 간다는 주장이다.
즉,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시점 등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어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노령화라고 하는 것이다. DNA 속에 축적된 유전정보의 변동은 세포기능에 교란을 일으켜 결국 그 세포를 죽음으로 이끈다. 이런 현상이 체조직 전반에서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나이를 먹는다’, ‘늙어간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식으로 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DNA의 교란 상태가 심해지는 것을 노령화의 주요 인자로 꼽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DNA의 교란 상태에 의해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질병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백개의 질환이 의학계에 보고되어 있으나 그들을 몇몇 그룹으로 분류해보면 동맥경화증, 고혈압, 당뇨, 비만, 알츠하이머 등 치매 같은 기력 쇠퇴, 암, 감염에 의한 면역기능 약화가 노인층 질환의 85%를 차지하게 되었고 또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급작스런 사고가 아니라면 결국 노령 때문에 죽는다. 우리 몸속에 세월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마모되고 결국은 함몰되도록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그래서 고령자들이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죽음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진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체조직이 마모가 되든 DNA의 생명 한계점에 도달하든 각각에게 주어진 수명이 있다. 그것은 대략 90~110년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질환을 모두 다 정복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 해도 결국은 1세기가 가장 최대의 수명이라는 결론일 수밖에 없다.
생의학의 발달은 인류의 평균 수명을 크게 끌어 올렸다. 한국인의 수명을 10년 단위로 보면 1970년의 한국인 남자 평균 수명은 58.6세, 여자 평균 수명은 65.5세였으며, 1980년은 남자 61.7세, 여자 70.0세, 1990년은 남자 67.2세, 여자 75.5세, 2000년에는 남자 72.2세, 여자 79.6세, 2010년에는 남자 77.2세, 여자 84세로 10년 평균 5~6년씩 수명을 끌어 올린 셈이다.
그렇게 의학이 발달되어 평균 수명을 끌어 올렸지만 의학이 아무리 발달된 나라도 100살 이상의 고령자는 1만명당 1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나 성장호르몬을 이용해 생의 젊음을 찾거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결국 부질없고 우리의 남은 생을 헛고생시킬 뿐이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어야 한다. 죽음의 손을 뿌리칠 수 있다는 환상은 인류 발전의 영속성과는 병존할 수 없다. 우리의 영생이 우리 자녀들의 권익과 양립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나이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이는 곰팡이만 자라나고 과거만 되풀이될 것이다”라고 그의 시에서 노래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체들은 때가 되어 죽음으로써 생의 무대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노령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요 이 세상을 자손들을 위해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주는 삶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과정인 것이다.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그의 저서 ‘철학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에서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고 세상 삶의 일부분으로 창조의 근원을 이룬다. 타인이 그대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그대 역시 타인에게 자리를 내주라. 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알차게 유용했느냐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내용과 결과에 따라 실제로는 얼마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늘도 웃어서 알차고 유용한 하루가 되시길.
하하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일단 웃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