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가 상영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심코 옆자리를 돌아보니 김가다의 옆자리에 앉은 군인이 애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푹 파묻어 놓고 뭔가를 열심히 탐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분이 몹시 언짢았지만 모른척 머리를 털어버리고 비몽사몽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요즘와서 그는 스스로 인내심이 많이 늘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쭈 쭈악!” “!!!” 기어코 김가다의 머리에서 불화산이 폭발하고 말았다. 캄캄한 극장 한복판에서 김가다가 벼락을 때리듯 고함을 내 지르고 말았다. “야 임맛! 뭐 뭐하는 거야 임맛! 다들 영화 보느라고 정신이 빠져있는데 뭘 물고 빨고 하는거얏! 엉? 여기가 니네 안방이냐? 엉?” “......”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잠잠해 졌다. 김가다가 벌떡 일어나 상영관을 나와 유니폼을 입은 여자에게 잼처 따지듯 물었다. “보셔, 극장에다 좀 써붙여 놓으면 안돼?” “예? 뭘 써붙여요...?” “영화상영중에는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예의를 지킵시다, 그렇게라도 말야. 엉? 뭐야 이거, 극장 안에서 물고 빨고 말얏!” “물고 빨다뇨? 쭈쭈바 말인가요?” 김가다는 혀끝을 두어번 차고 나서 극장문을 열고 휑하니 밖으로 나왔다.
“젠장헐, 이제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 아니라 다빈치코드 바람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내 조상이 될판아냐. 뭐 이런 얼뜨기 같은 인간들이 세기말에 판을 치고 이래 진짜루...” 코에서 뜨거운 단숨이 팍팍 쏟아져 나왔다. 하늘은 짙은 회색빛으로 잔뜩 찌푸려 있었고 짖누를 듯 답답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무표정한 것도 짜증스러웠고 오세훈이랑 강금실이 빌딩의 중턱을 뚝 잘라먹은 채로 활짝 웃고 있는 모습도 같잖았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간 ‘다빈치코드’는 아니었지만 진짜로 본전 생각이 간절한 아침이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랑했던 제자들과 민족이 등 돌린 배신의 쓴잔을 달게 마신 예수였어. 그 무서운 십자가의 형틀에 매어 달린 채로 물과 피를 몽땅 쏟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고통의 눈물과 치열했던 사랑 이외엔... 그 어떤 잘못된 천재가 내뱉는 소리도, 그 무엇도 내겐 모두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 김가다는 파고다 공원을 가득하게 덮고 있는 짙푸른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김가다는 땅바닥을 기어오는 한 걸인의 바구니에 선뜻 만원짜리 한 장을 넣어주면서 가슴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바로 이것이 진실이지.” 그제서야 비로서 김가다의 영혼은 5월의 여왕처럼 활짝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아, 5월은...5월은 정말 소름끼치도록 아름답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