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월5일 평양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6자회담에 조건부로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원 총리와 만나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북미의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의 상황을 지켜본 뒤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우리 조선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점에 변화가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위공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 제재조치가 취해진 뒤 지난 4월 6자회담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뒤 5월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미국의 대북정책에 맞대응 해왔다.
북한의 6자회담 조건부 복귀 시사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등에 제재를 가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북한에 대한 자주권 보장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원 총리의 이번 방북을 계기로 북한의 대화복귀 방침을 세계에 공지한 것은 중국의 중대 업적으로 평가된다.
너무도 생뚱 맞은 ‘그랜드 바겐’
북중 회담이 성과를 올린 평양과 서울을 비교하면 착잡하다. 북한과 중국 지도자가 평양에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을 협의하는 동안 서울 여의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한결 같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단계적 해결원칙을 확인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그것을 외면하는 비현실적 방안을 강조하는 것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어떤 방법으로 실천될 것인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칼에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그랜드 바겐 구상은 너무나 생뚱 맞다.
북한과 중국이 전 세계를 향해 공표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방안을 남북이 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북한이 최근 김대중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특사 조문단을 서울에 보내고 금강산, 개성관광 재개를 제의하는 등 지난 1년여 동안 지속했던 대남 공세적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남한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청와대 등은 북한 핵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 정상화는 시도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면서 마치 주문에 걸린 듯, 자기 최면에 걸린 듯한 완강한 태도를 고집한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상식을 외면한 대가는 지구촌의 남측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아닐까?
21세기 지구촌에는 두 개의 분단국가가 있다. 한반도와 중국이다. 지구촌은 두 분단국가가 통일을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보면서 비교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지난 해 중국 쓰촨성 지진 사태 등을 계기로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의 고속도로를 놓고 있다. 중국은 지난 1일 중국공산당 창립기념일인 국경절을 맞아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거듭 강조했다. 중국은 교착 상태인 한반도 비핵화 협상체제를 복원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더니 평양에서 세계를 향해 ‘북미회담 개최’를 확실히 하는 큰일을 해냈다.
냉전 태도 버리는 게 급선무
한국에서는 이 대통령 집권 이후 지난 1년여 동안에 과거 10년 동안 이룩한 남북교류협력관계의 공든 탑이 거의 무너져 버렸다. 한국은 유엔 등이 대북 제재를 가할 때 앞장서서 북한에 매질을 한다. 이런 모습을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이 감탄스런 시선으로 바라볼까?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한쪽 당사자라는 특수 입장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과 입장이 다르다.
이 대통령은 최근 내년 11월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 유치한 뒤 한국이 세계 중심에 서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냉전시대의 태도를 고집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반도의 선진화는 남북한의 평화공존이 선결조건이 아닌가?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수구세력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지구촌에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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