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달아서 통로 가장자리에 세워 둔 바퀴달린 가방마저 그녀의 뒤를 맹렬히 따라가더니 버스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마누라에게 한복을 맞춘 손님의 꽃신 두 켤레와 원단 뭉치 등 조금 전에 영어성경 속에 그녀가 쑤셔 박아 두었던 쌍과부 집 명함 다발이 버스바닥에 처참하게 흩어졌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김가다의 얼굴에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김가다가 달려가서 가방 속에다 흩어진 물건들을 황급히 주워 담았지만 흩어진 명함이야 김가다가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김가다는 내릴 정거장이 아닌데도 주첨주첨 출구 쪽으로 다가서서 벨을 눌렀다. 순간 김가다의 뒷통수를 때리는 운전기사의 말이 너무도 야속했다.
“보셔! 그 흩어진 명함은 그냥 버려두고 내리면 어쩌죠? 버스가 뭐 쓰레기 통입니까?”
김가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강하게 흔들면서 대답했다.
“명함요? 그 그건 제 명함이 아닙니다. 제가 쌍과부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아니, 아저씨 가방에서 쏟아진 물건인데 아저씨 물건 아니면 누구 물건이죠?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그렇게 비양심적이면 안되죠. 겉은 그렇게 안 뵈는데 속은 아주 굴퉁이네.”
“그, 그건 저 아줌마가 내 가방 속에 억지로 쑤셔넣은 겁네다아! 제 것이 아니라구요오!”
가까스로 자리에 돌아와 앉은 그 해괴한 아줌마가 물탄꾀를 부리며 무뜯듯이 말했다.
“아니, 저 아저씨가 정신이 돈 사람 아냐? 아님 어느새 치매가 왔던가. 아아니 그게 왜 내 명함이유 아저씨 가방에서 쏟아졌는데. 참 기가 막혀 죽겠네.”
“!!!”
버스 안 누군가의 입에서 또 이런 말이 다사스럽게 삐어져 나오고 있었다.
“쌍과부 줄려구 꽃신도 두 켤레 샀구먼 뭐. 씰데없이 굴지말구 얼렁 그 명함들 주워넣고 내려요. 그럼 못쓰죠. 모름지기 자식들도 다 키워 놓았을텐데 체면이 있지 그래?”
순간 김가다는 정신이 아뜩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이 절대절명의 불행한 상황을 일단 벗어나고 봐야겠다고 판단한 김가다는 부랴부랴 흩어진 명함을 주워 모아 가방 속에 쑤셔넣고 버스를 내렸다.
“아흐, 진짜루...인생살이 고달프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김가다는 가방을 아내 앞에 던지듯 밀어놓고 훌쭉 헬스가방을 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만사가 귀찮았지만 운동이라도 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김가다는 서슬이 시퍼래진 아내의 얼굴을 딱 맞딱뜨리고는 가슴이 철렁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의 눈꼬리가 위로 쫙 찢어지고 있었다.
“쌍과부? 언제부터 쌍과부네 집에 드나들었는데 숫제 명함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홍보까지 허구 다니셔? 좋아요! 지금은 손님이 들이닥칠 때니 일단 참겠어. 이따 집에 가서 제대로 한번 따져봅시다. 노숙자 될 각오 단단히 해야겠수, 당신?”
그날 밤 김가다는 고양이 앞에 떨고 있는 생쥐처럼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아뢰는 딱한 꼴이 되어 연신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 사람 참 살다보니 환장할 일이었다.
“아고! 하나님. 하나님은 왜 남들은 평생에 한번도 겪지 않을 괴망스런 꽃뱀사건을 내게는 한번도 아니고 너댓번씩이나 겪게 하는겁니까, 진짜루.”
그때 어디선가 김가다를 위로하는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넌 소설가 아니냐. 세상살이와 부대끼지 않고서야 어떻게 재미있는 소설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겠느냐.”
그제서야 김가다의 입가에 함박꽃 같은 미소가 뻥시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