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불위간 예나 지금이나 부대에서 총기를 분실했다면 부대안이 벌집 쑤신 듯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그날 김가다는 누루락 붉으락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중대장에게 불려가서 주둥이가 당나발이 되도록 줘터졌었다.
“이런 순 대가리에 똥만 가득찬 놈앗! 군인은 총이 생명인데 총을 잃어버리고 다녀 영창감이야 짜샤! 영창가서 한 석달간 칵 썩엇!”
“최 일병 자식이 자기총은 꼬불쳐 놔두고 내 총을 포주한테 잡히구 오입질 하는 바람에...”
“씨껏! 훔친 놈보다 잃어버린 놈이 더 나빴! 군기가 빠졌다는 증거아냐 짜샤!”
어느 날엔가는 일종 창고 속에 몰래 숨어들어가 쌀을 따블백 속에 퍼 담아 야밤을 틈타 십리나 넘게 떨어진 육단리 마을로 내려가 술집여자와 고추박이 짓거리를 하고 들어오는 놈이었다. 그 바람에 부족한 쌀을 메우려고 일종계를 맡아 보던 고 일병이 집에다 대고 돈 좀 보내달라고 애걸복걸 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또 감투욕심이 지독해서 상병으로 올라서자 마자 꼴에 분대장을 시켜달라고 인사계한테 얼마나 알랑방구를 뀌며 뇌물 공세를 퍼부었던지 모른다. 대학시절에도 과대표가 되겠다며 학교 앞 술집에서 허구헌 날 친구들에게 술을 샀었다.
친구들이 마지못해 녀석을 과대표로 선출해 주었는데 녀석은 졸업 후에도 손바닥만한 시 한편을 디밀고 ○○문인협회 회원이라고 명함을 박아갖고 선후배들 사이를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더니 언젠가부터 ○○문인협회 간부로 출마하는데 도와달라며 허구헌 날 동문들을 찾아 다니며 덥절덥절 술을 샀었다. 결국 동문들에게 ○○문인협회 회원으로 등단시켜주겠다며 시 한편씩에 30만원씩을 받고 ○○문인협회에 회원으로 수십명씩 등단시켜주고 그 덕으로 ○○문인협회 감투를 쓰고 다녔었다. 좌우지간 그런 일이 있고부터 김가다는 ○○문인협회라면 아예 손사래를 쳤다. 하여튼 감투 욕심이 그렇게 많은 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오늘 밤에 김가다는 예상했던대로 녀석에게 전화를 받았다. 김가다는 볼멘소리로 퉁 던지듯 말했다.
“얌마. 네 처남이 양주시 ○○의원으로 출마하느데 내가 왜 나서냐? 내가 골에 지진이 났냐?”
수화기 속에서 녀석의 유령같은 목소리가 으스스 할 정도로 김가다의 영혼을 소름끼치게 했다. 녀석의 목소리는 언제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음산한 것이 특징이었다.
“야 임마. 내 처남이 양주시에서 한자리 잡아봐라. 너 양주시에서 잘나가게 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고 그 덕에 나도 양주땅으로 이사가서 뭔가 한자리 틀어쥘 것 아냐. 좌우지간 의정부 백악관으로 8시까지 나와. 물고구마 만들어 줄게. 쭉쭉빵빵 아가씨들이 다글다글 해.”
김가다가 수화기가 푹발하도록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일 없어 쨔샷! 너나 실컷 물고구마가 되든지 물감자가 되든지 해 쨔샤! 너 나이가 지금 몇 살이냐? 나이값을 해 임마! 나이값을!”
그리고 김가다는 수화기를 깨지듯 내려놓고 눈에 불이난 듯 씩씩댔다.
“지구 밖으로 쫓겨나서 우주쓰레기나 뒤질놈...”
순간 무엇에 된통 얻어맞은 듯 김가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이런! 이 살기좋은 양주땅에도 그 물귀신같은 녀석과 똑같은 놈이 커플로 있잖아!”
김가다는 입맛이 떱떠름 한 듯 혀끝으로 천정을 때리며 속으로 알쭌하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아, 눈을 똑바로 뜨고 주위를 살펴봐. 남이 씌워 준 것도 아니고 제 대가리에 제가 감투 씌워놓고 내가 아무개요 하고 거덜대고 있는 년놈 한쌍이 보일테니까. 애그...참 딱덜두 허지, 쯔쯔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