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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일락/양주사랑교회 목사 |
1992년 봄, 많은 수의 흑인들이 LA에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5천200개의 빌딩이 불에 타 1조원의 물질적인 피해뿐 아니라 2천383명이 부상을 당했고, 그 중 5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폭동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쉬지 않고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가게를 샀는데 몇 푼의 보험료 아끼려고 보험도 들지 않고 있다가 그것이 불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폭동사건으로 LA 한인타운이 엄청난 피해를 당한 이유를 아십니까? 놀랍게도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직접적인 이유는 백인경찰들이 한 흑인을 방망이로 폭행한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시민에 의해 찍힌 그 폭행장면이 TV로 방영되자 흥분한 흑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그 때 흑인들이 백인들을 공격해야 하는데, 백인동네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백인들을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가까운 한인타운으로 몰려가서 건물을 불지르고 총을 쏘아 많은 사람을 다치고 죽게 했습니다.
여러분, 한인타운에 있는 한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아닙니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오직 한 가지, 흑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LA 한인타운 근처에 살고 있는 흑인들은 한국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한국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들의 90% 이상이 흑인동네에서 흑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합니다. 흑인들 때문에 먹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흑인 때문에 돈 벌고 흑인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데, 한국사람들이 흑인들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 하여 흑인이라고도 부르지 않고 ‘검둥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미국 가서도 ‘깜디’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떤 교회에서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한 성도가 자기도 모르게 “검둥이가 왔어요”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한 성도가 “깜디는 왜 데려왔노?”라고 했더니, 흑인이 피부를 마구 문지르면서 이렇게 한국말로 말하더랍니다. “나도 언젠가는 뽀예질 겁니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 속에 살아갑니다. 잘못된 줄도 모르고 수많은 편견 속에 살아갑니다. 이 편견이라는 단어를 웹스터 사전에서는 ‘미리 정해진 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세워놓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편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견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편견은 오래갑니다. 한번 세워놓은 편견은 수정되기 어렵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제 버릇 남 주나’라고 하면서 그 사람이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해도 좀처럼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바뀌지 않습니다. 둘째, 편견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 친구 아마 얼마 있지 않아 본색을 드러낼 걸’ 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왜곡하여 판단합니다.
셋째, 편견은 이유 없이 미워하게 만듭니다. 한번 편견에 사로잡히면 ‘왜 그런지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은 다 미워 죽겠어’라고 하며 아무 이유 없이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하다못해 그 사람의 자녀까지도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합니다. 이것을 ‘편견의 무서움’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부패한 특징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편견의 눈’입니다. 다른 사람을 편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영국의 비평가 버나드 쇼가 영국 사회를 관찰하다가 건전한 비판이 아닌 잘못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로뎅의 작품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버나드 쇼가 그 사람들의 편견을 교정하기 위해 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기 집에서 큰 파티를 열었습니다. 특별히 그 파티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골라 초청했습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버나드 쇼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아주 귀한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그림을 하나 가지고 와서 걸었습니다. “여러분, 멋있지요? 이것이 로뎅의 작품입니다.” 장내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서 편견에 사로잡힌 혹독한 비판들이 쏟아졌습니다. “야, 색깔이 왜 저 모양이냐!” “그래, 맞아? 우중충하지?” “어떻게 구도가 저 모양이냐?” 급기야는 “저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나?”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러한 비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버나드 쇼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여러분,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그만 그림을 잘못 갖고 나왔네요. 이 그림은 로뎅의 작품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그러자 그렇게 시끄럽던 장내가 조용해지더랍니다. 이처럼 편견은 무섭습니다. 여러분, 올 한해를 살아가는데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