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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민/외과전문의 |
퇴근길 전철안. 북적이는 사람들을 헤집고 겨우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본다. 동료들과 같이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반주를 한 탓인지 앉자마자 노곤하니 졸음이 밀려온다. 아직 목적지까지는 한참 남았기에 기분 좋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즈음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렁찬 어르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모처럼 찾아온 쪽잠의 여유로운 순간은 산산이 부셔져 버리고 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느끼며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하신 할아버지가 전화 통화 중인 모습이 보인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한창 질주하는 전철의 굉음보다도 백배는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할아버지의 말소리에 전철안 사람들은 모두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의 대화 내용을 낱낱이 엿듣게 된다.
전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일화다. 대체 이 어르신의 목소리는 왜 이리도 커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주범은 노인성 난청인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노인성 난청은 65세 이상의 연령에서 별 다른 이유 없이 양측 귀에 대칭성인 난청 형태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노인성 난청은 노화에 따라 청력에 관계된 신체 구조물들에 찾아오는 퇴행성 변화 때문에 발생되며 조사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인구에서 약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쉽게도 현재 노인성 난청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이나 많은 경우 보청기를 사용함으로써 청력을 호전시킬 수는 있다.(간혹 청력이 완전히 소실되어 회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노인성 난청을 조기에 발견하여 가급적 빨리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보청기를 조기에 착용하여 청각장애를 빨리 극복함으로써 노인성 난청에 따른 심리적, 사회적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지게 되며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시끄러운 소음이 난무하는 공장에서 목청을 높여 말을 하는 것이나, 젊은 사람이라도 술에 취해 감각이 무뎌지게 되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노인성 난청 환자의 경우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커지는 것뿐이며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어르신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속사정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불편해 하게 되며 심한 경우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노인성 난청은 개인의 신체적인 질병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사람들 사이에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갈등은 노인 인구가 점차 많아짐에 따라 더욱 증가되리라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특수상황에 대처함에 있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본다면 최소한 노인성 난청을 가진 어르신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만이라도 의외로 많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한편으로는 그동안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못난 행동을 알게 모르게 많이 행하여 온 필자 자신부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