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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신용협동조합이 파산 나자 이사장이었던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 노숙자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길거리를 방황하던 그는 어느 날 잘 되는 라면집 앞에 손님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때 그에게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지 않고 집에서 간단히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는 인스턴트 라면의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겨우 3평짜리 실험실을 마련하고 연구에 몰두했지만 1년 동안 계속 실패의 연속이었다. 라면이 상하지 않게 건조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무언가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좀처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튀김 하는 것을 도와주다가 다시 한번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갔다. ‘기름에 튀겨서 건조하면 어떨까?’
그는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젖은 면을 기름에 튀기면 밀가루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급격하게 증발해 빠져나가게 되고 건조해진 면에 뜨거운 물이 다시 들어가면 면이 원래대로 부드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1958년 48세 나이로 면을 바로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순간 유열 건조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인스턴트 라면을 탄생시켰다.
일본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닭고기맛의 국물을 곁들인 ‘치킨라면’을 탄생시켰으며 이것은 ‘마법의 라면’이라는 별명이 붙은 채 값싸고 영양가 높은 대용식으로 전국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는 라면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으며 1971년에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안도 모모호쿠이며 일본 닛신식품의 회장으로 2007년 9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인들이 자기나라 발명품 중 최고로 꼽고 자랑하는 것이며 전 세계를 통틀어 연간 800억개나 소비되는 대단한 발명품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이들이 인스턴트 식품의 폐해를 주장하여 차별 대우를 받기는 하지만 안도 회장은 매일 한끼 이상 라면을 먹었으며 97세까지 정정하고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꿈꾸는 소년 같이 생각했다. 그의 꿈 중에 하나가 바로 우주인이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라면을 우주에 가져가고 싶습니다”라고 피력하며 자신의 회사에 10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을 꾸려 우주식 개발에 착수, 2005년 스페이스셔틀 디스커버리호의 우주비행사가 먹을 세계 최초의 우주식 라면 ‘스페이스 라무’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우주식은 매우 까다롭다. 우주선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뜨거운 물의 온도는 70℃를 넘어서는 안되며 무중력 상태에서도 면이 날아다니지 않아야 되는 조건에 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밀가루와 전분의 배합을 변경하여 70℃의 물에도 면이 복원되게 하여 간장맛, 된장맛, 카레맛, 돼지고기맛의 4종류 우주식 라면을 우주비행선에 실어 보내게 되었다. 그는 우주식을 실어 보내는 날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항상 먹을 행위가 따라 다닙니다. 우주까지라도…. 꿈같은 우주식 라면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너무 기쁩니다.”
그는 닛신식품을 운영하며 식품회사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평화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때 찾아온다. 둘째, 현명한 식습관이 아름다움과 건강을 고취시킨다. 셋째, 식품을 창조하는 것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먹는 것이 넉넉해야 세상이 평온하다는 철학을 늘 이야기하였다.
연일 북한은 핵도발로 위협하며 벼랑 끝 전술로 평화를 깨려하고 있다. 먹는 것이 넉넉해야 평화로울텐데 백성을 굶겨 죽게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하여 체제유지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의 위정자들을 볼 때 북한은 국민은 없고 오로지 특권층만을 위한 사회가 되어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식자원의 편중을 막고 함께 잘 먹어야 평화가 오는 것을 어찌 실천해야 할까?
남한과 북한의 먹을 것을 나누는 시범적인 사업인 개성공단도 넓게 보면 남북한 평화에 많은 공헌을 해온 것임에 틀림없다. 크지는 않지만 먹을 것을 나누는 출발점은 되었고 남북경제 협력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래서 오늘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착잡하기만하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쩔 수 없을 땐 웃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