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잠시 주춤하고 있는 오늘 김가다는 소요산의 약수터에 앉아 한가로이 상념에 젖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서울 광장시장으로 장돌뱅이 행차를 나갔지만 오늘 하루 징검다리가 있어 모처럼 가게에서 가까운 소요산을 찾은 것이다. 전철이 소요산까지 개통되는 바람에 소요산 등산객이 전에 없이 부쩍 늘어 음식점들이 너도나도 맛자랑을 내놓으며 성업중이었다. 그때 한 중년의 남자가 매우 험상궂게 생긴 개를 한마리 데리고 약수터에 나타났다. 순간 김가다는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가는 30여년 전의 세 친구가 그리워졌다.
“꼭 뚱을 닮았네. 하지만 역시 뚱만큼은 생긴 게 덜하군...”
김가다가 회암리의 산골짜기에서 어렵사리 둥지를 틀고 삶의 밑바닥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이태원에서 국제결혼해 살고 있던 사촌 여동생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기르던 개를 김가다에게 주면서 신신당부했다.
“오빠, 이 개는 사람에겐 아주 온순한데 동물들만 보면 무섭게 사나워져요. 잘 키우세요.”
생긴 것이 하도 우락부락한데다 잠잘 때는 코를 우렁차게 골아댔고 덩치도 바위처럼 큰 것이 표정은 항상 바위를 삼킨 듯 뚱했다. 그래서 김가다는 녀석의 이름을 뚱이라고 새로 지어주었다. 당시 김가다는 점박이 돼지 한마리를 산에다 풀어놓아 기르고 있었는데 뚱은 그 점박이 돼지가 얄미워 언제고 한번 단단히 혼을 내줄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어느날 뚱은 자기가 묶여 있는 바로 코 앞에서 먹다 남은 밥을 점박이가 유유자적하며 먹어치우는 꼴을 보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뚱이 길길이 날뛰건 말건 점박이는 연신 얄기죽거리기만 했지 뚱에겐 조금도 아랑곳 않았다. 그게 더욱 뚱의 울화통에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기어코 뚱은 쇠사슬을 끊고 점박이에게 탱크처럼 돌격해 들어갔다. 700여평 되는 밭을 링으로 삼아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김가다와 마누라가 아무리 괭이로 때리고 빗자루가 다 닳아 빠지도록 때려도 두 놈은 한 발자욱도 물러설 줄을 몰랐다. 김가다가 찬물을 한 양동이 쏟아부었다. 두 놈은 오히려 시원한 듯 더욱 거세게 물어뜯고 들이받고 난리가 났다. 점박이는 귀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려도 연신 뚱을 주둥이로 밀어부쳤고 뚱은 점박이의 등에 올라타 점박이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점박이는 그때 임신중에 있었다.
“큰일났네. 새끼 떨어짐 어떻게...아빠 어떻게좀 해봐요오!”
김가다가 뭔가 생각난 듯이 황급하게 소리쳤다.
“물을 끓엿! 빨리 솥에다 물을 붓고 불을 때잣!”
얼마 후 뜨거운 물을 끼얹은 뒤에야 겨우 두 녀석이 싸움을 멈추었다. 장장 두시간 동안의 혈투였다. 당시 김가다네 집에는 장군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수탉이 한마리 있었는데 이놈이 딸애가 유치원에 다녀올 때마다 노적가리 근처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가 딸아이를 공격하곤 했다. 그래서 김가다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쯤이면 몽둥이를 들고 기다렸다가 녀석을 공격했지만 녀석은 어느새 눈치를 채고 숲정이 속으로 감쪽같이 숨어버리곤 했다. 언젠가 고추밭에서 풀을 뽑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울기에 깜짝놀라 달려간 순간 김가다가 그만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채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린아이 팔뚝만한 살모사가 딸아이 발치에서 목을 빳빳히 세우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장군이 녀석이 살모사의 머리를 그 굵은 부리로 탁탁 쪼아대는 것이 아닌가. 장군이는 결국 그 살모사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김가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딸아이를 얼른 안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 뒤로 김가다 부부는 음식찌꺼기 등을 알뜰살뜰 모아두었다가 장군이에게 주고 극진히 모셨다. 그 후부터 신기하게도 장군이는 딸아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당시 김가다네 옆 집에서는 진돗개 잡종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그 개가 어느날 사슬을 끊고 탈출해서 주인의 팔뚝을 물어뜯고는 곧바로 닭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닭이랑 오리 등 수십마리를 물어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무도 그 개를 잡을 엄두도 못내었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뿐 어째볼 도리가 없었다.
“이봐요들, 가까이 가지 말아요오. 저 놈이 미친개야 물렸다하면 광견병 들어서 사람도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잖어.”
“총으로 쏴 잡아야해.”
“아, 총이 어디있어야죠.”
“군부대가서 좀 부탁하던지 아니면 돼지고기를 쏘주에 담갔다 먹이든강.”
“돼지고기를 쏘주에 담궜다 먹여? 어떻게 되는데 그럼?”
“아, 술에취해 떨어져 잘거아냐. 그때 살그머니 다가가 도끼로 목을 냅다 내리치든가 자루에다 통째로 쑤셔넣든강!”
“애그...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악령 들린개야. 사람이 악령이 들면 그렇듯 짐승도 악령이 들면 눈동자가 저렇게 살기를 내뿜지, 아고오! 무섭다!”
그런 어느날 그 잡종 진돗개가 김가다네 집 뒷산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점박이를 향해 대들었다. 당시 점박이는 만삭이었다. 놈은 붉게 충혈된 눈을 휘번득이며 사람의 접근을 어림도 없게 했다. 개도 악한 영이 깃들면 그렇게 무서운 눈빛이 되는 모양이었다. 점박이가 비명을 지르고 고통스러워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김가다가 바지랑대를 꼬나들고 놈을 마구 후려쳤으나 놈은 오히려 김가다를 잡아먹을듯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어놓고 대드는 바람에 김가다도 가슴만 숫껑처럼 타들어 갈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곧 새끼를 낳을텐데...아구 큰일났네 진짜아!”
그때였다. 어느 틈에 숲속 참나무 밑둥에 묶어놓았던 뚱이 길길이 날뛰더니 기어히 사슬을 끊고 점박이를 향해 내달았다. 잡종 진돗개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뚱까지 합세한다면 점박이는 걸레가 될 판이었다. 아!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뚱이 잡종 진돗개의 허리를 그 큰입으로 덥석 물더니 마구잡아 흔들고 있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깨갱거렸으나 뚱은 놈을 놔주지 않았다. 이윽고 놈이 혓바닥을 축 늘어뜨리고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점박이는 저만큼 떨어져 멀건한 눈으로 뚱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뚱은 점박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뒤 뚱은 어느날 밤 못된 사람들이 던져준 고깃덩어리를 먹고 죽고 말았다. 개도둑들이 뚱의 시체를 끌고가다가 워낙에 무거워 산 중턱에 버리고 갔다. 김가다는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뚱을 묻어놓고 하루종일 뚱의 무덤 앞에 앉아 막걸리 한통을 다 비웠다. 지금 김가다는 30여년전 회암리의 산골에서 함께 동거동락 하다시피 했던 세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고 땅이 준비되면 그 때의 세 친구 같은 놈들을 구해다 다시 길러봐야지...”
하지만 지금 약수터 나무기둥에 묶어놓은 흉측스레 생긴 그 개가 아무리 비교해봐도 뚱만큼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맹한 것도 그렇고 충성스러운 것도 그렇고 의리를 지키는 면에서도 뚱에 견줄만한 개는 찾기 힘들거야. 또 잠잘 때 코고는 소리는 얼마나 우렁찼던지...”
김가다는 요즘 정치권에 달라붙어 상대방을 물어뜯느라 이빨을 세우고 호가호위하는 일부 철새 정치인들에 비해봐도 뚱의 이빨이 훨씬 정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사람 못난 것은 개만도 못하다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