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김가다 부부의 기분은 쑥대밭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옆 사람이 무어라 행여 말이라도 걸어 올까봐도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 염려가 금새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의정부 사세요?” “예? 아, 아뇨...” “뭐 의정부까지 갈 것 있습니까?” 그러면서 사나이가 지갑을 꺼내더니 다빡 명함 한 장을 김가다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김가다는 또 심사가 뒤틀렸지만 엉거주춤 명함을 받아보았다.
“시의원에 출마하시는군요.” “허허허...정치 한번 똑 부러지게 해볼 작정입니다. 뭣하시면...제가 단골로 다니는 모텔이 도봉산 밑자락에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시설 끝내주고 서비스 끝내주고 비밀 보장되고, 제가 소개하면 가격 싸고” “.......” “애인 되시는 분이 참 미인인데요?” “.......”
사나이의 뇌꼴스런 모습에 김가다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사나이는 조금 머쓱해진 모양이다. 택시 안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도봉동에서 택시를 벗어났다.
그런데 이번엔 택시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떠죽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 양반 공자 앞에서 잘난 척 했네, 허허허. 모텔이라고 하모 택시 운전사 만큼 빠삭한 사람 있으모 한번 나와보라고 하소. 내가 진짜 끝내주는 모텔 알고 있는데 애인하고 하룻밤 놀다가기에는 그저 고만잉기라...” “......”
의정부 북부역에 주차해 놓았던 김가다네 승용차에 옮겨타고 나서야 김가다는 푹 하며 단숨을 토해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봐 마누라. 같이 늙어가자구 엉?” 마누라가 남편의 그 말을 듣고 금새 빵시레 웃으며 물방울이 굴러가듯 말했다.
“에그 같이 늙긴 왜 같이 늙어요? 아빠가 젊어지면 되잖우. 아빠는 그 눈밑에 심술주머니만 제거하면 한 십년은 젊어보일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젊어집시다.” 그렇게 말하는 마누라의 말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지 김가다의 기분이 조금은 풀어진 모양이었다.
“비쌀 것 아냐.” “아무리 비싸도 그 심술주머니는 없애줄테니 걱정마시라요.” “흐흐흐…그래 심술주머니만 없으면 사람들이 오늘처럼 마누라와 나 사이를 오해하진 않을거야. 에그 세상이 참 한참 더러워졌네...딸아이 데리고 백화점에 한번 가고 싶어도 세상놈덜 눈치가 보이니 원....그나저나 그 시의원에 출마한 놈 참 딱두허다아. 그런 놈한테 표 찍어주는 시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도 참 댁덜두 딱허우…쯔쯔쯔.”
<끝>
소설집 <여보, 나 여기 있어>, <트럼펫> 등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