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가다가 사나이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고 금새라도 박치기를 날릴 태세였다.
“아니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엉? 어따대구 새끼 손가락을 깔딱거려 임맛!”
사나이도 질세라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선반위에다 훽 던져버리고 김가다의 멱살을 맞잡았다.
“뭐가 어째? 내가 틀린말 했냐? 이 여자가 그럼 진짜루 네 놈 마누라냐? 웃기지 말어 임맛!”
마누라가 죽을상이 되어 김가다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아구, 글세 이러지 말아요. 빨리 이 손 놓고 택시 타고 갑시다아!”
김가다가 그렇게 통사정하는 마누라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사나이의 이마에 박치기를 ‘빡’소리 나도록 들이 박았다. 덩저리만 컸지 나가 자빠지는 걸 보면 영락없는 탱쇠였다.
사나이가 비명을 지르며 멱살 잡았던 손을 맥없이 풀고 전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예끼! 바퀴벌레 같은 놈. 그러구도 처자식 거느리고 사냐?”
마누라가 부랴부랴 김가다의 손을 붙잡고 창동역에서 내렸다. 막차였으니 다음 전철을 기다릴 것도 아니고 택시를 잡아타고 의정부까지 내 달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예 팔을 로봇처럼 뻗치고 섰는데도 택시들은 쌩쌩 내 달리기만 했다.
간신히 택시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추었다. 기사가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어디 가시죠? 방향이 같으면 합승해 드리겠는데.”
“의정부요.”
택시 안에는 넥타이가 풀어헤쳐진 채로인 남자가 김가다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운전석 옆에 앉은 마누라는 또 불안한 얼굴로 김가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피곤한데 한숨 자요.”
김가다는 아직도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다.
20년전 모처럼 마누라와 함께 동창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지금은 경주의 K호텔 사장으로 있는 친구가 김가다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야 저 여자 어디서 낚았냐? 세컨드 맞지?”
“이런 개불상놈아. 세컨드가 뭐야 임마. 처녀 총각으로 만난 정식 마누라야 임맛!”
뿐만 아니었다. 결혼식장에나 장례식장을 찾을 때도 또 교회 집회나 어떤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도 사람들은 김가다 부부를 향해 모두 눈알을 데굴데굴 외로 굴렸다. 대학 동창회에서도 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들눈을 뜨고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거렸었다. 특히 여자친구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이 가관이었다. K중학교에 교장으로 있는 여자친구가 새살궂게 속삭이듯 물었었다.
“얘, 진짜 네 마누라니? 열두살 연하의 조강지처 맞어?”
김가다는 그 여자친구의 말을 기억해 내고는 끙 하고 신음 섞인 한숨을 짧게 내어뱉으며 옆자리에 앉은 신사양반을 흘끔거렸다. 그 사나이에게서도 술냄새가 찐하게 풍겨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