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14일은 연인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날인 ‘밸런타인데이(St. Valentine's Day)’로, 로마의 성인이자 그리스도교 사제인 발렌티누스(Valentinus)가 클라우디우스 2세(Claudius Ⅱ) 황제의 병사에 대한 금혼령을 어기고 병사의 결혼성사(結婚聖事)를 진행하여 순교한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2월 14일은 로마의 성인에 못지않은 대한민국의 성인(聖人)과 관련된 날이기도 한데, 이에 대하여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한민국의 성인은 바로 안중근(安重根) 의사이고, 이와 관련된 날이란 안 의사의 사형 언도일인 1910년 2월14일을 가리킨다.
안 의사는 애국계몽운동으로 성(聖)스러운 행보를 시작했다. 삼흥․돈의학교를 설립했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도 관여했다. 하지만 한일신협약(행정․사법권 피탈) 이후 항일무장투쟁을 결심하고 연해주로 망명하여 대한의군을 창설하여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했다. 항일투쟁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안 의사는 11인의 동지와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 및 이완용 등을 제거하기로 결의했다.
의거일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기다리던 안 의사가 걱정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하얼빈역에 하차하려던 이등박문의 당초 일정이 변경되어 침략의 원흉을 제거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등박문은 하얼빈 역에 하차하였고 안 의사는 의거를 성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하고 동양평화를 교란시킨 장본인을 제거할 수 있었고, 대한에 대한 일본의 불범 침탈을 만방에 알릴 수 있었으며, 주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주권회복에의 의지를 고취할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정의(正義)가 아직은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대저 성인이란 무엇을 말하던가. ‘지혜와 덕이 뛰어나 길이 우러러 받들어 본받을 만한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 여기서 지혜란 범인(凡人)이 알지 못하는 숭고한 것을 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덕이란 이러한 내적인 앎이 외적으로 표출되어 언행으로 형상화된 실체를 말한다. 안 의사는 조국의 주권회복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를 행하여 세상에서 보기 힘든 숭고한 덕을 드러냈고, 이로써 그 성스러운 행보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2월14일은 대한민국에서조차 로마의 사제 발렌티누스의 날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의 2월14일에는 로마의 성인 외에도 우리의 성인인 안중근 의사가 있음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2월14일을 로마의 성인에게서 빼앗아 대한의 성인에게 전적으로 속하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성인은 한 종교를 위해 희생한 순교자(殉敎者)요, 대한의 성인은 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자(殉國者)로써, 각자 성인으로 추앙받을 만한 영역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2월 14일을 ‘성 발렌타인 데이’로써 전과 같이 즐기되, 마음속에서만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이 정해진 날로써 엄숙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