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에 맞아보는 첫눈 치고는 어지간히도 펑펑 쏟아지는 첫눈이었다. 꽃가루 같은 눈송이가 차창으로 쏟아지듯 달겨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끊이지 않고 달려가는 자동차 헤드라잇이 비치는 눈발 속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은 채로 열정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물어뜯고 있는 중이었다.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사람이 욱삭거리는 시장 한복판에서나 전철이나 버스 속에서도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스킨십을 벌인다. 남이야 요강으로 꽈리를 불건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건 상관할 바가 없다는 식이었다. 어쨌거나 명멸하는 헤드라잇의 불빛 속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열심히 스킨십을 벌이고 있는 한쌍의 청춘남녀의 모습을 보고 김가다는 속으로 허허 탄식으로 중얼거렸다.
“딱두허다. 하두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나머지 영화배우 되어보긴 아예 싹이 노오랗구 저렇게라두 해서 스포트라이트 좀 받아보고 싶은 그 가난한 심정이 참 보기 안됐고나...”
문득 김가다는 스킨십의 선구자라고나 할까. 김가다보다 3살 아래인 대학후배가 생각났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이미 여성편력이 수다한 후배였다. 또래들은 여자친구 커녕 식모 아가씨랑도 한번 사귀기도 하늘의 별을 딸 처지였다. 녀석은 또 그림을 아주 잘 그려서 음악실 같은데 홀로 앉아 있는 여학생의 얼굴을 즉석에서 스케치해 레지에게 전해주는 수법으로 여자낚시를 기가 차게 즐기곤 했다. 아마도 당시만해도 그가 상대했던 여자를 손꼽아보면 수십명도 넘을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여성들과 엽색행각을 벌였지만 정작 나이 50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혼자서 노년을 쓸쓸하게 보내는 후배였다. 그런데 녀석은 앞에 사람이 앉아있건 말건 데리고 나온 여자를 쉴새없이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다. 누가 채어가기나 할까봐 그러는지 몰라도 감고 있는 허리에서 팔을 풀 줄을! 몰랐고 한쪽 손으로 연신 여자의 머리를 쓸어넘겨 준다거나 턱이나 뺨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연신 만지고 쓰다듬고 그랬다. 보다못해 김가다가 한소리 쏘아붙였다.
“얌마, 닳겠다. 닳겠어. 그만 좀 만져라. ”
“허엉!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본 형님이야 뭐 여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나 하겠쑤.”
“...!”
그런 그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을리 없었지만 집이 워낙 부자라서 돈으로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구워 삶는데는 달리 그를 멀리할 이유도 없긴 했다. 그는 항상 자신을 경원하는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술도 펑펑 살뿐 아니라 마음이 내키면 자기가 차고 있던 비싼 손목시계도 그 자리에서 풀어주는 호기도 심심찮게 부리는 녀석이었다.
하여튼 닭살이 돋을만큼 여자를 쓰다듬고 앉았는 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김가다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좌불안석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여자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가 나이 40고개턱에 올라섰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한낮의 찌는 더위가 찜통 같았던 여름 날이었는데 그가 김가다가 살고 있던 시골에 두 번째로 찾아왔었다.
“야 연애 고만하고 결혼해 임마.”
“상대가 있어야 할거아뇨. 형님두 참.”
“뭐라고? 아니 얼마 전에 데리고 왔던 여잔 또 어떻게 됐냐.”
“종쳤수!”
“대체 너란 놈은 지금까지 사귄 여자가 몇 명이냐 100명도 넘지 아마?”
그가 그녀와 헤어진 사연을 들어보니 참 기가 찰 일이었다. 그는 어느 날 새롭게 친해진 애인과 함께 해방촌으로 접어드는 미군부대 담벼락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담벼락 안쪽에 세워진 전봇대에 정말 집채만한 커다란 변압기가 매어 달려있었다는데 그는 그날 그 변압기 아래로 여자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걷고 있었다고 했다. 순간 그 변압기가 뭘 잘못 쳐 먹었던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불꽃을 터뜨리는 바람에 녀석이 그만 혼비백산한 나머지 죽어라 해방촌 쪽으로 내 달렸다고 했다.
“여자는, 여자는 어떡허구? 여자도 델구 내뺐냐?”
“참! 형님두 딱허우. 아 머리 위에서 생벼락이 떨어지는데 나부터 살구 봐야지. 여자구 나발이구가 어딨수? 아, 여자야 또 구하면 되지. 나부터 살고봐야 할거 아뇨오!”
“...!”
“좌우지간 죽을똥 살똥 모르고 내 달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느새 김씨네 푸줏간 앞입디다.”
“글세 여잔 어떡했냐구. 이 등신아아!”
“참 한심하게두 그녀가 그때까지도 그 변압기 아래서 엉금엉금 기어옵디다.”
“저런! 그래서, 여잘 어떡했냐구 이놈아! 그냥 내깔려 뒀냐?”
“참나 기가 차서! 때마침 없던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그 바람에 여자의 치마가 훌렁 뒤집어져 갖고 궁뎅이를 훤하게 까놓구성...”
“저, 저런, 하아니 그럼 빨리 뛰어가서 여잘 챙겼어야지. 그대루 놔뒀냐?”
“아, 변압기가 금새라도 폭발할 것처럼 날뛰는데 겁이 나서 어떻게 또 그 변압기 밑으로 가요오! 형님도 봤지않우. 그 집채만한 변압기말요. 그게 폭발하면 어떻게 되겠수?”
“예끼! 이 형편없는 놈아. 그래두 그렇지. 아니 애인이 오금이 저려 치마를 훌렁 뒤집어 쓴채로 엉금엉금 기고 있는데 너만 살겠다고 바라만 보구 있었단 말야?”
“치암! 아, 형님 같았으면 형수님 내 팽개치고 36계 안 놨을거 같우? 닥쳐보지도 않구서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잘난척 하는거 아뇨.”
“그래, 어쨌거나 그렇다치구. 그 뒤로 어떻게 됐어?”
“그 여자가 겨우 내 앞에까지 사시나무 떨듯 하며 다가왔는데 내가 그 여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부추기자마자...”
“옳지, 일으켜 세우자마자 어찌됐어? 그 여자가 널보구 고맙다구 빵시레 웃음짓든?”
“아, 냅다 내 따귀를 왕복으로 연거푸 올려부치질 않겠수.”
“당연하지! 면도칼로 네 가운뎃 다리를 싹뚝 잘라버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그래서?”
“끝난거지 뭐. 그 시루.”
“에이그 댁두 참 딱허우! 쯔쯔쯔... 그래 평상시엔 불면 날아갈까 엎어지면 뒤통수 깨질까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애인을 그래 변압기가 뭘 좀 잘못 먹고 쥐약 먹은듯이 악을 써댔다고 해서 여잘 헌신짝 버리듯하고 저만 살겠다고 내빼? 옛기 형편없는 놈아!”
그 후배는 어쨌거나 지금까지도 장가를 못간 채로 강남에 있는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미랭시처럼 늙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김가다는 조금전 눈속에서 열심히 여자의 입술을 물어뜯고 있던 녀석을 그 후배의 얼굴에 접목시키기면서 가슴으로 중얼거렸다.
“진실하고 애절한 사랑이란 그것이 너무도 소중해서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수줍어하며 애쓰는 영혼의 몸부림이어야 하는거야...정치도 마찬가지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자기만이 최고인양 이빨은 잘도 까면서 뒷구녕으로는 호박씨나 까는 그런 사람에게 나랏일을 맡긴다는 것은 얼마나 우부우맹한 일이겠어.
그나저나 애그 댁덜두 참 딱허우. 하아니, 사기꾼 놈하나에 기린처럼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거기에다 권불십년을 걸고 있으니 오호애재라! 차라리 고대로 돌아가 ‘디오게네스’처럼 벌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거리를 누벼봐야겠구나. 어디 사람없소? 어디 사람없소? 하고 말이지 선거 때나 나타나서 시장 사람들 손 붙잡고 스킨십 벌이며 가리산 지리산 흰 수작 벌인다고 나랏일도 잘하는거 아냐 에거...에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