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에게 신뢰를 얻은 자만이 간언을 할 수 있다.”
한비자는 <세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진정한 충신은 군주의 뜻에 거스르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하고, 간언은 반드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된 후라야 자신의 뜻을 충분히 군주에게 설득할 수 있다. 먼저 군주에게 신뢰를 쌓음으로써 쓸데없는 의심이나 불신을 사라지게 해야 그 후로는 어떠한 비판을 하여도 그 뜻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은 단 칼에 내쳐버렸다. 김무성, 전여옥, 진영 그리고 얼마 전까지 세상을 떠들썩거렸던 유승민까지…. 한비자의 주장대로라면 박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정치인들은 주군에게 신뢰를 쌓지 않았기에 쓸데없는 의심이나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과연 한비자의 주장이 옳을까?
한비자는 아주 적절한 사례를 들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송나라에 부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어느 날 큰 비가 와서 담장이 무너졌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아버님 담을 고쳐 쌓지 않으면 언제 또 도둑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그 무렵 이웃에 사는 사람이 집주인을 찾아왔다. 이 사람도 집주인에게 아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우연의 일치랄까? 그날 밤, 그 집에 도둑이 들어 엄청난 재산을 털어갔다.”
한비자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그 부자는 아들에게는 참으로 현명하다고 칭찬했지만, 아들과 똑같은 경고를 했던 이웃 사람에게는 강한 의심을 품었다. 결국 신뢰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신뢰였다.
똑같은 충고를 해줘도 누구는 칭찬을 해주고, 누구는 더욱 강한 의심을 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게다가 한 번 가진 의심은 더욱 커져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절대로 작아질 수 없는 것이 사람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다. 특히 남다른 배신의 트라우마를 가졌다는 박 대통령이 아니겠는가?
이제 박 대통령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아섰다. 현재 남아있는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오랜 기간 동안 보좌했던 인물들이다. 한비자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충고를 남겼다.
“임금에게 간하고 유세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에 대한 임금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정도를 잘 파악한 다음 말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용이라는 짐승도 잘 길들이면 그 등에도 탈 수 있다. 다만 목줄기에 한 자 가량 거꾸로 선 비늘이 있어 타는 사람이 잘못하여 그 것을 건드리면 죽게 된다. 임금에게도 이러한 비늘이 있는데 유세객이 그 비늘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일단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간언을 할 수 있는 유세객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