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선조는 필연과 악연이 얽혀있는 특이한 관계다.
지방 관리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로 전격 승진시킨 이는 선조이고, 왜적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으로 만 백성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순신을 시기해 역적으로 몰아 죽기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던 이도 선조이다.
선조가 이순신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1597년. 그는 우승지 김홍미에게 ‘비망기’를 내려 이순신 숙청에 나선다. <선조실록> 30년 3월13일자에는 권력 유지에 눈이 먼 전형적인 비정한 임금의 분노가 서려 있다.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없는 것으로 여긴 죄이고, 적을 놓아주고 공격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이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남을 모함한 것은 방자하여 기탄함이 없는 죄이다.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으면 법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고, 율(律)에 의거해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인신(人臣)으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여야지 용서할 수 없다.”
선조는 이순신을 배신의 아이콘으로 삼았지만, 백성은 선조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여겼을 것이다.
전쟁 중에도 권력투쟁에 여념이 없던 조정 대신들은 왕의 지엄한 분부를 받들어 최전방에서 분투 중인 이순신을 해임하고 한양으로 불러들여 가혹한 고문을 가하며 사지(死地)로 몰아세웠다.
권력욕에 빠진 모사꾼들의 눈에는 이순신과 같은 충신은 제거해야 할 먹잇감에 불과했지만 원균의 참패로 망국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다시 구한 이는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총선이 끝났다.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은 3당 체제로 뒤바뀐 새로운 정치지형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중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배신의 정치를 되뇌고 있고, 몰박(몰락한 친박)이 된 친박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당 지도부 장악에 몰두하고 있다. 여당의 방황은 심각한 국정 혼란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집안 싸움부터 진화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국민이 그렇게 정답을 가르쳐줬는데도 아직도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는 무모한 무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