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가 장똘뱅이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오는 시간대에는 전철이 유별나게 붐볐다. 한 30분 만 일찌감치 타도 전철은 한결 헐렁하니 덜 복잡하지만, 30분 늦게 시장바닥에서 어물거리다가는 영락없이 콩나물시루에 갇힌 듯 한겨울인데도 이마에 진땀이 바작바작 베어 나왔다. 그런데 김가다가 전철을 탈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남자들이야 체면불구하고 몸을 마구 디밀어 사람들 틈을 비집고 타고 내린다지만 여자들 입장에서는 출퇴근시간이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거라고 김가다는 늘 생각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그렇다 치지만 여름철에 얇고 짧은 옷을 걸친 아가씨들이 그 우왁스런 남자들 틈사이로 비집고 타고 내릴 때면 어지간히 눈알이 튀어나올 일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전철을 탈 때마다 김가다는 어렸을적 고향 들판에서 커다란 병에 메뚜기를 잡아 넣던 시절이 떠올려지곤 한다. 메뚜기를 한 옴큼씩 잡아서 병 주둥이로 한두마리씩 밀어 넣으면 메뚜기들은 병안에서 서로 살겠다고 목이 빠지는줄도 모르고 아우성을 쳤다. 김가다는 오늘도 이렇게 빽빽하게 들어찬 전철 승객들을 안쓰러운 눈길로 둘러보면서 사람들이 그때 그 병 속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메뚜기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오늘도 전철은 구간구간을 지날 때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몸을 동그란 전철 손잡이에 매달아 놓고 김가다는 꾸벅꾸벅 졸았다. 어제도 김가다는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책상에 고개를 쳐박고 원고를 쓰느라고 밤을 홀딱 샜다. 그러니 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전철인데 오늘처럼 사람이 많아 자리를 잡을 수 없으면 손잡이에 매달려서라도 잠깐 눈을 붙여야 했다.
얼핏 김가다는 오른쪽 뺨에 와 닿는 싸늘한 냉기를 느끼고 졸린 눈으로 옆사람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순간 김가다는 깜짝 놀랐다. 백금녀 뺨치듯 뚱뚱한데다 얼굴이 넙대대하니 썩 어렵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김가다 쪽을 향해 사나운 눈살을 보내오고 있는게 아닌가. 깜짝 놀란 김가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머님, 제가 뭐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지금 저를 노려보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김가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이 영감태기가 왜 남의 궁뎅이에다 주책을 떨구 지랄이얏!”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던 사람들이 모두 화들짝 얼굴을 들었다.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가다와 그 부인 쪽으로 쏠렸다. 순간 김가다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얼핏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얼굴과 목덜미 뿐 아니라 온몸이 수백개 바늘로 찔리는듯 따가웠다.
“아니 아주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거죠 진짜?”
순간 사람들의 키득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을 뭘루 보는거야? 꼴 같지 않게 머릿털은 꼭 쿤타킨테처럼 빠글빠글 볶아갖고!”
김가다가 죽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머리 끝에서는 김이 푹푹 끓는 느낌이었고 코에서도 단내가 푹푹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니, 이 아주머니 졸지에 사람 자라대가리 만들어 버리네. 멀쩡한 사람 너구리 만들지 말라구 진짜! 왜 남의 머릿털을 갖고 시비야 시비가. 내 머릿털 이거 오리지날이라굿!”
전철 안에 있던 승객들이 무력한 공기를 깨뜨리며 터진 희한한 헤프닝에 김가다네 쪽으로 기웃기웃 목줄을 늘어뜨리며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김가다의 얼굴색이 완전히 팥죽 색깔이 되어 버렸다. 참다 못한 김가다가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이봐요 아주머닛! 내 마누라 궁뎅이도 뚱뚱해서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인데, 그 두배도 넘는 하마같은 아주머니 궁뎅이를 뭐 좋다고 만졌겠어. 허헛 참 착각도 분수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또 까르르 웃어댔다. 여자가 또 김가다의 말을 단박에 받아쳤다.
“뭐가 어째? 하마궁뎅인 궁뎅이가 아냐? 말이면 다야? 만졌으면 미안한 표시는 못할망정 어따대고 개소리야? 개소리갓!”
“뭐요? 개소리? 말 다했어 진짜?”
여자가 손가락마다 번쩍이는 보석반지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연신 김가다의 얼굴을 향해 종주먹질이었다. 김가다가 또 벼락 때리듯 소리를 내 질렀다.
“손가락을 칵 물어뜯기 전에 치우지 못해? 뭐 보석반지 자랑하는거야? 아이고 참, 대체 어디서 거꾸러 칵 쳐박혀갖고 얼굴이 제 멋대로 뒤죽박죽으로 생겨먹어갖고 진짜!”
“뭐가 어째? 이 자식잇!”
“딱!”
“헉”
순간 김가다는 왼쪽 뺨에 여자의 손바닥에 낀 보석반지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가다는 진짜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이빨을 사리물었다.
“아줌맛! 궁뎅이를 만진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엉뚱한 사람 잡는거야 진짜루!”
“뭐가 어째? 네 놈이 내 궁뎅이 쓰다듬는거 저 유리창 속에서 다 비치던데 무슨 딴소리얏!”
“고소할꺼얏! 엉뚱한 사람 성폭행으로 몰고간 아줌마를 경찰에 고소할꺼라굿!”
“허헝! 그러셔? 좋았어, 가자고 그럼. 같이 경찰서에 가자굿!”
여자가 김가다의 멱살을 움켜쥐고 내리자고 잡아 끌었다. 순간 김가다는 이것 참 낭패라고 생각했다. 장돌뱅이 가방이 양손으로 낑낑 들어도 힘든 판인데 여자와 실갱이를 벌이며 파출소까지 간다는 것도 여간 괴꽝스런 일이 아니었다. 김가다가 목에다 힘을 잔뜩 주면서 여자의 팔목을 비틀었지만 워낙에 살집이 굵은데다 힘이 보통 빡센 것이 아니었다. 김가다는 이빨을 아드득 갈았다.
“이런!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에라이 썅!”
“빡”
“...”
여자가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김가다는 장똘뱅이 가방을 움켜쥐고 재빨리 성북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를 쾅쾅 내며 어두컴컴한 난간 쪽으로 걸어가 엉덩이를 털썩 내던졌다. 코와 입에서 여전히 단내가 확확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김가다는 스스로에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야, 김가다. 그걸 뭐 그리 속상해 하냐. 어차피 자빠져도 코가 깨지도록 되먹은 인생아냐. 그래도 얼마나 감사하냐 여지껏 큰 탈없이 처자식 잘 데리고 살아왔잖어.”
김가다가 별들이 보석처럼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도 그렇죠 하나님. 제가 이 나이 되어서도 그 하마처럼 못생긴 여자한테 그딴 억울한 소릴 듣고 살아야 합니까?”
“글쎄 그건 그 부인이 김가다를 잘못 본 것 뿐이라니까. 김가다는 절대 그렇지 않아. 나 하나님이 잘 알고 있는걸. 세상에는 그렇게 엉뚱한 사람이 많다는거 이제 알았어?”
김가다는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마음을 다 잡아 먹고 막 도착하는 동두천행 전철에 발걸음을 힘차게 들여놓았다. 탑삭나룻이 까무잡잡한 승객 하나가 김가다의 얼굴을 연신 힐끔 거리며 이렇게 생각했다.
“그 양반 어지간히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네. 경기가 엉망이라 모두들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저렇게 벙실벙실 대는 얼굴이고 보면 말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