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면 김가다는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로 나와 잠깐 기도한 후 조그만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7시쯤 되면 마누라가 부시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원고를 쓰고 앉아있는 김가다의 등을 선연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7시30분에 김가다 부부는 탁자를 사이하고 마주앉아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김가다는 잘게 썬 인삼을 믹서기에 넣고 돌린다. 베지밀 한 통을 뜯어 꿀과 함께 선식을 한 숟가락 타서 마시게 한다. 아내가 장사하랴, 바느질 하랴, 종일토록 손님에게 시달려 밤이면 녹초가 되다시피 해서 집안 살림은 김가다가 도맡아 한다.
지난 밤에 미쳐 못한 설거지를 깨끗하게 마친 후 압력솥에 쌀을 앉혀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뒤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한다. 밥이 다 될 때까지 김가다는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고 아내는 얼굴을 예쁘게 단장하느라 화장손길이 바쁘다.
아내는 선식을 아침대용으로 마셨으므로 김가다 혼자 아침식사를 마친 뒤 9시쯤 두 사람은 가게를 향해 집을 나선다. 김가다가 운전을 할줄 모르기 때문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지만 옆에 앉아 2차선은 위험하니 1차선으로 가라느니 앞에서 쓰레기 줍는 할머니가 알짱거리니 속도를 낮추라는 둥 규정속도를 어기지 말라는 둥 졸지 말라는 둥 벼라별 잔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김가다의 깨죽거림을 듣다듣다 못한 아내가 한소리 한다.
“아빠, 내려놓고 가기 전에 그 잔소리좀 고만 하시라요.”
“...”
가게에 들어서면 먼저 마주앉아 기도로 마음을 굳게 다진 뒤 김가다는 걸레를 들고 바닥 청소랑 진열장 유리를 깨끗이 닦는다. 그 사이 아내는 김가다의 장돌뱅이 행차 준비를 하느라 한가지 한가지 조심스럽게 물건을 챙기고 오늘 사갖고 올 물건을 적은 쪽지를 건넨다.
“물건 잃어버림 몇백만원 휑하니 공중분해 되는 거 알죠? 돈도 돈이지만 당장 결혼식에 입을 옷을 못 입으면 그 형세가 어떠하오리까?”
“말이 아니지 그럼, 쫓겨나서 노숙자 될 가능성도 있구...”
“지나다니는 여자들한테 한눈 팔고 다니다 전봇대에 이마빡을 부딪혀 사쿠라꽃이 만발했던 일 기억나죠?”
“나지 그야, 그 참혹했던 기억을 망각했으면 사람이라고 볼 수 없지.”
“싸다고해서 쓸데 없는 거 이것저것 사지 말라구요. 요새 기름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데 돈을 허투루 쓰면 되겠소이까 안되겠소이까?”
“안되지 그야! 뭐 내가 꼭 필요해서 사는 거지. 허투루 사는 것만도 아니잖어.”
“아빠 모자가 몇갠지 알우? 내가 어제 장롱 정리 하다보니 모자가 30개두 넘습디다. 그걸 다쓰고 다니는거 아니잖우.”
“그야 그렇지. 처음엔 괜찮다 싶어 샀는데 막상 써보니까 아니잖어.”
“어쨌거나 조심해서 다녀와요. 점심은 반드시 팔팔 끓인걸루 사 잡숫고 날음식은 절대로 안되요. 차 조심하구요.”
마누라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김가다는 11시쯤 장돌뱅이 가방을 끌고 전철역을 향한다.
“차 조심 하라니. 하늘같은 남편을 뭐 취급하는거야 진짜루...”
원단시장에서 물건을 모두 장돌뱅이 가방에 잘 갈무리해 챙겨 넣고 돌아오는 전철에 오르면 대체로 오후 4시쯤 된다. 빈자리가 없으면 몰라도 자리가 나면 김가다는 앉자마자 원고지를 꺼내놓고 또 글치레를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흘금흘금 곁눈질을 하건말건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요강으로 꽈리를 불든 일체 상관하지 않는다. 아내의 가게가 있는 동두천에 내리면 5~6시쯤 된다. 손목에 자개 바람이 일듯 무거운 장돌뱅이 가방을 아내에게 건네주고 난 뒤 김가다는 또 헬스가방을 들고 스포츠센터로 향한다.
“마누라가 나보다 나이가 12년이나 젊잖어. 그러니까 어느날 밤 갑자기 마누라가 합방이나 하자고 와락 대들면 그때야 말로 제대로 힘써줘야지. 그 상황에 늘옴츠래기가 고개만 척 늘어뜨리고 있으면 그것도 퇴출 이유중 제일 첫 번째가 될테니...죽어라 운동해서 힘을 길러놔야지...”
그리고 9시30분쯤 두사람은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늘상 하는 대화도 비슷하다.
“오늘 얼마나 팔았지?”
“어제는 한 벌도 못팔아 꽝이었는데 오늘은 많이 팔았지용.”
“글세 얼마나 팔았느냐고오!”
“알아맞춰 보셩!”
“000원!”
“흥! 날 뭘로 보셔? 물로 보는거여 시방?”
“000원!”
“근사치에 접근했구만요. 감사한 하루야요 영감타구니임!”
집으로 돌아오면 대략 10시쯤 되고 김가다 혼자 또 늦은 저녁을 먹고나서 못 다 치운 쓰레기나 집안 청소도 하고 빨래를 한아름 안아다 세탁기에 털어놓고는 버튼을 눌러놓는다.
그 사이 아내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김가다도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다. 요즘은 황사가 자주있어 저녁에 머리를 감지 않고 자면 베게가 금새 새까매진다.
그리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CBS TV를 켜서 장경동 목사나 김문훈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1시쯤 되면 아내는 침대로 가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곧 코를 골기 시작하고 김가다는 다시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 쓰기에 몰입한다.
금새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곧 에라 모르겠다 침대로 들어가 버린다. 그 때가 새벽 2시쯤이다. 대체로 김가다 부부의 하루일과가 그렇다. 물론 그 사이 시간을 쪼개어 마트에도 가야 하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도 뛰어 다녀야 하고 가끔씩 외식도 해야 한다. 주일날엔 하루종일 교회에서 성극 연습하랴 성가 연습하랴 군부대 위문 가랴 더더욱 바쁘다.
지난 4월19일 김가다는 딸을 시집보냈다. 돌이켜 보면 참 기적처럼 살아온 인생이라는 느낌이었다. 딸이 결혼식을 올리던 바로 전날에 친구 김홍신(인간시장)이 비서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이튿날 일본에 강의차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며 전날 저녁에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가 김가다의 기억으로 벌써 다섯 번째 묻는 질문을 던졌다.
“야, 김가다 너 말이다. 지금 마누라님이랑 결혼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욱둥이 성격에 지금쯤 사람 두어명 죽이고 깜빵에서 종신형을 받고 독방에서 쭈그리고 앉았거나 알콜 중독으로 노숙자가 되었거나 뭐 그렇게 되지 않았겠냐? 동창들 마구 두들겨 팼던거 기억나냐?”
“잘 알고 있어. 언젠가 망발풀이 한번 해야지.”
“네가 장가가서 이렇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시집장가까지 보낼 줄을 어느 누구가 예측이나 했겠냐? 참 믿겨지지 않는 현실이지 진짜.”
“뭐 그렇겠지. 사람들은 내게 완전히 절망했었으니까.”
“그게 모두 네 마누라 잘 얻은 탓 맞지? 솔직히 털어놓으면.”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맞아 네 말이.”
“게다가 안빈낙도 끝에 너 이렇게 작가가 되어 신문이나 잡지에 웅숭깊은 글 꾸준히 싣고 게다가 10권짜리 대하소설까지 탈고했다니 대체 이게 믿어도 되는거냐?”
친구가 돌아가고 난 뒤 김가다는 베란다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온 뒤라 그런지 모처럼 별들이 보석처럼 깔려 있었다. 김가다는 가슴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나의 나 됨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까마득한 옛날부터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셨던 섭리의 은총 탓이지...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 덕분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김가다의 가슴은 불에 데인듯 아프게 신음했고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잔물잔물 베어 나오곤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