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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 문종 1년 9월20일 기사는 “자살한 박이창에게 치전 제문(致奠祭文)을 짓고 부물을 내릴 것을 명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절사 박이창은 원래 규정된 미곡보다 40두를 더 가져간 것을 치욕으로 판단해 자살한 관리다. 당초 박이창은 법을 준수하고자 했으나 종사관들이 장마철에 수재(水災)를 만나 아사할 가능성을 제기하자 법을 어긴 것이다.
의금부 도사도 사정을 딱히 여겨 문종에게 사실 그대로 보고를 올린다. 이에 문종은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치전 제문(致奠祭文)에 모름지기 이러한 의사(意思)를 갖추어서 짓고 또 부물(賻物)을 후하게 줄 것이며, 그 일행(一行)이 범한 바도 아울러서 탄핵하지 말도록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치전 제문이란 임금이 신하의 죽음을 조상하는 제문이다. 문종은 호조에 전지하기를 “절일사(節日使) 박이창이 그 범법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재(自裁)하기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불쌍하고 민망하게 여긴다. 그 사부(賜賻)를 미두를 아울러 80석과 관곽(棺槨)과 종이 1백권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7월23일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은 자신의 금품 수수를 인정하며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는 유서를 남겼다.
예나 지금이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공인의 길을 택한 인물들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질 줄 모르는 후안무치의 정치꾼들은 고 노 의원의 죽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