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북방의 강자 거란족과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거란이 태조 왕건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보낸 낙타를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은 거란 적대정책의 상징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고려와 같은 민족 국가인 발해를 멸망시킨 원수이기 때문이다.
거란도 중원 공략을 위해선 후방에 위치한 고려의 손발을 다 묶어놓아야만 했다. 송과의 일전을 치르는 동안 고려가 배후를 칠 경우 거란은 진퇴양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거란은 고려를 먼저 손보기로 했다. 소손녕의 80만 대군이 압록강을 넘었다.
하지만 고려의 책사 서희는 거란에 맞서 고구려 계승론을 역설하며 오히려 거란의 땅을 요구했다. 아울러 양국간 외교관계 수립이 해결책임을 강조하며 교류를 위한 강동 6주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소손녕은 서희의 외교술에 넘어가 화의를 맺었다.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와 거란은 일시적인 평화관계를 유지했으나 목종 폐위 사건과 고려왕의 거란 방문이 불발되자 거란은 다시 대병력을 일으켰다. 하지만 고려의 양규 장군과 강감찬 장군의 반격으로 결국 거란은 고려 침략을 포기했다.
거란과 고려의 종전은 동북아의 평화를 이끌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전을 불사한 고려 조정과 서희와 같은 탁월한 외교술, 그리고 양규와 강감찬 장군의 전술이 어우러진 쾌거라고 평가받는다.
최근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한반도가 들썩이고 있다. 한일 정치권은 연일 험악한 말을 오가며 확전에 전념하고 있다. 일본의 도발에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국 정치권의 대결로 애꿎은 기업들이 피해를 볼 공산이 크다.
지금은 강감찬 장군의 전술보다는 서희의 외교술이 필요하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통찰력과 상대국의 단점을 명확히 파악해 협상에 나설 ‘제2의 서희’가 절실하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