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덜(Michael 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트롤리 딜레마’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논점은 이성적 정의와 정서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샌덜은 하버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며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첫 번째 문제는 이러하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지금 시속 100㎞가 넘는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전차가 가는 방향 저 앞에 다섯 명의 인부가 철로에서 작업 중이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브레이크를 잡아도 멈출 수 없고 다섯 명의 인부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대신 오른쪽으로 갈라진 철로가 있는데 그곳에도 한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다. 레일을 오른쪽으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은 당신이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대로 직진할 것인가? 아니면 레일 변환 장치를 작동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인가?”
첫 번째 문제는 영국의 여성 윤리철학자 필리파 푸트(Philipa R. Foot)가 제안한 것으로 하버드대 학생들은 89%가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미국의 심리학자 죠슈아 그린(Joshua Green)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를 사용하여 응답자들의 뇌 활동을 조사했는데 이성적 의사결정을 하는 전전두엽 부위가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명의 인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이성적 정의가 대부분 학생들의 사고를 합리화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하다. “당신은 육교 위에서 전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 전차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그런데 철로 앞 쪽에는 다섯 명의 인부들이 작업에 열중하느라 이를 모르고 있다. 마침 당신 옆에는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이 이를 같이 보고 있다. 순간 판단이 이 사람을 밀쳐 떨어뜨리면 전차가 멈출 수 있을 것 같은 판단이 선다. 당신은 다섯 명의 인부를 구하기 위해 옆에 있는 거구의 사나이를 떨어뜨릴 것인가?”
이 문제는 미국의 도덕철학자 쥬디스 톰슨(Judith J. Thomson)이 첫 번째 문제에 이어 추가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하버드대 학생들은 78%가 뚱뚱한 사람을 육교 아래로 밀어서는 안된다고 응답했다. 첫 번째 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죠슈아 그린이 fMRI로 응답자의 뇌 활동을 조사한 결과 이번에는 편도체(amygdala)를 포함한 정서와 관계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뚱뚱한 한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정서적 정의가 학생들의 사고를 정리하게 한 것이다.
두 문제 다 한 명을 희생하여 다섯 명을 살리는 점은 공통점이 있지만, 인간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내려야 할 윤리적 결단은 이성적 시스템과 정서적 시스템이 서로 갈등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 우세한 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결정이 신경윤리학적 관점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이성적 판단이 점점 커지고 감성적 판단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병사들이 서로 총을 쏘며 피비린내 나는 살육 현장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 사고가 지배했으나, 2차 세계대전에서는 포탄을 쏟아부어 수백 수천명을 죽일 수 있지만 직접 눈에 보이지 않고 명령에 복종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성적 사고가 더 많이 작동했다.
앞으로의 전쟁은 엄청난 수의 미사일을 단추 하나 눌러 쏘아 셀 수 없는 인명이 사라져도 모니터 상에서 붉은 점 하나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컴퓨터 게임 같기 때문에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의 전쟁은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두뇌의 감정 센서는 전혀 활성화되지 않고 명령만 수행하는 이성적 센서만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확실히 현대는 감성적 판단을 배척하고 이성적 판단만 신봉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해고 통지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전송되고, 암 선고가 이메일로 보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트롤리 딜레마가 사라지고 있으며 사회 정의가 하향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인가? 결코 아니다.
웃음은 이성적인 신경회로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감성적인 뇌를 통해 나오게 된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정서적 부분을 보완하고 윤리적 측면에서 균형 잡힌 정의를 실현해 갈 수 있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 방법이 웃는 것이다. 웃음은 이성과 정서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인간 관계의 회복은 웃음이 답이다. 나의 호의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 웃음을 적극 활용하자.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