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문화와 혁신
장례문화와 혁신
양주시 백석읍 가업리 은봉사(보현사) 주지 혜운 석 덕 진
죽음이 오지 않은 상태를 삶이라고 하듯 삶이 끝나는 상태를 죽음이라 의미한다. 죽음은 삶과 동 떨어진 개념이 아닌 표리 관계이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장래에 닥쳐올 죽음에서 비롯되는 공포나 의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숙명처럼 체념하듯 받아들일 뿐이다. 또한 사회적 의미의 죽음은 연속적인 탄생과 죽음이라는 순환 고리 속에서 파악되는 자연현상이기도 하다. 한 사회는 수많은 탄생과 그 결과일 수도 있는 죽음을 처리하기 위해 그 사회만의 독특한 상. 장례 문화를 가꾸어 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상. 장례 의식을 통해 죽음을 처리하는 한편 삶의 의미를 재확인 한다. 따라서 상. 장례문화란 이런 총체적인 삶의 방법을 반영하는 것이며 의식의 형식에 관계없이 한 사회의 근본적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의 죽음을 모시는 의례가 상례이며, 한 사람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절차이자 의식이다.
한국의 상. 제례에 있어 특징적인 점은 그 형식의 다양성이다. 이러한 형식의 차이는 상. 제례에 따르는 가치관의 차이를 의미하여, 나아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간에 문화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상. 제례역사는 커다란 문화충돌을 거쳐 왔다. 그 동안의 전통적 장례의식과 기독교나 카톨릭 등의 종교의식간의 형식을 둘러 싼 마찰은 이제 개인적, 가정적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로까지 넓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법에 기초하고 있는 상. 제례는 결국 그들의 종교적인 세계관에 근거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한국사회에 혼재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만큼이나 많은 형태의 상. 제례의식이 기능하는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 서양 종교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갈등해소의 문제 외에
조선의 종식에 이은 일제의 속박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질서를 장악하는 운영주체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과 동시에 피지배 국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을 의미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전통문화를 재해석하고 문화적 충돌 등을 주체적으로 해소할 기회를 상실하였으며, 60년대 이후에는 아무런 문화적, 정신적 근거도 없는 행정위주의 관제 상. 제례마저 생겨나 한 몫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혼재상황은 결국 국민을 가치혼돈과 생활의 혼돈 속으로 빠지게 할 뿐이다.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가 상례라면, 그 방법은 장법이라 할 수 있다. 장법은 민족이나 생사관, 이데올로기, 그 사회의 종교 등에 따라 화장, 수장, 풍장, 매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발달해 왔다. 이 네 가지 장법은 단순한 형태나 방법의 차이라기보다는 이를 행하는 민족이나 인류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화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전래 이후 삼국과 고려시대에는 매장과 함께 화장 역시 보편적인 장법으로서 우리의 전통문화로서 자리 매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는 매장이 한민족의 문화적 전통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고려시대까지 성행했던 화장은 불교와 함께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근. 현대에 들어오면서 납골을 전제로 하는 일본식 화장이 비공식적으로 유입되면서, ‘의례준칙’을 통해 화장은 식민지 총독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장법이 되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화장의 재현이 아니라 새롭고도 낯선 일본식 화장으로 이것이 화장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으며, 최근까지도 화장과 화장장을 기피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묘지로 인한 국토의 훼손 방지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구호 아래 화장이 선호하는 장법으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한편, 봉안은 화장 후 유골을 처리하는 보편적 방법으로 자리 잡는데, 이 봉안묘라는 추모시설은 우리나라의 조상숭배라는 문화적 전통을 실천할 수 있어 쉽게 수용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당분간 봉안이 화장 후 유골을 처리하는 대표적 방법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의 문중묘지들이 문중봉안당. 문중봉안묘 등의 형태로 바뀌고 있고, 가족 봉안당이 이미 상당수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추모시설을 조성하지 않는 자연장에 대해서는 일부 거부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장묘를 만들지 않고 화장을 하더라도 유교식 조상숭배정신에 입각하여 추모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봉안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봉안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봉안을 하여 묘 등의 추모시설을 만들면 조상숭배의 실천이 매우 편리할 것이나,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공공복리적 논리가 ‘반매장’을 합리화 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단순히 매장의 폐해를 이유로 화장을 주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매장은 악이고, 화장은 선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상숭배라는 문화적 전통에 대한 충분한 천착 없이, 그리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대한 충분한 연구 없이 화장을 추진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실상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인 매장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조성 분양한 ‘매장식 납골묘’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매장을 하여 육탈되면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 납골할 수 있는 형태였다. 또한 일부 공원묘지에서는 매장과 봉안을 함께 할 수 있는 복합묘를 개발하였는데, 봉안 전용보다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공원묘지의 경우 현재는 매장을 위한 공원묘원이지만 ‘평장형 납골묘’를 개발하여 특허를 받은 상태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공원묘원에서도 가끔 보이는데, 한국형으로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눈여겨보아야 할 하나의 장례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혁신은 단지 현상을 부정하고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부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기능하는 현상유지 논리를 타파해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이다.
뿌리 없이 왜곡되어 있는 작금의 우리 장례문화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