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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의 의정부시가 지난 9월28일 1회성 축제인 ‘태조·태종 의정부행차’에 무려 4억원의 예산을 소진한 것도 모자라 역사 왜곡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축제를 만들기 위해 의정부의 역사적 정체성마저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의정부시는 620년 만에 ‘태조·태종 의정부행차’를 재현하여 의정부의 역사적 정체성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허구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의정부시는 10월20일 ‘왕이 걷던 길, 시민과 함께하다-태조·태종 의정부행차, 30억 경제효과…왕의 도시가 움직였다’는 기획기사를 발표했다.
여기서 의정부시는 ‘실록이 밝힌 역사적 순간…1405년 헌수례의 재현’이라는 소제목 아래 “행사의 역사적 기준은 <태종실록> 제10권에 기록된 1405년(태종 5년) 11월6일이다”며 “이날 태종은 개성에서 한양으로의 두 번째 천도 과정 중 태조를 옛 견주(見州, 현 의정부·양주 일대)에서 맞이하며 헌수례를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제10권 태종 5년 11월6일 무술 1번째 기사인 ‘태상왕을 견주에서 맞이하고 모시고 자다’에는 “임금이 태상왕을 옛 견주(見州)에서 맞이하였다. 임금이 숙소(宿所)에 나아가 헌수(獻壽)하니, 태상왕이 조용히 이르기를, “양도(兩都)에 내왕(來往)하여 백성들이 생업(生業)을 편히 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부터는〈한군데〉정(定)해 살 수 있겠는가?”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이내 모시고 잤다”라고 나온다.
디지털양주문화대전을 보면, 견주는 고려의 수도 개경 인근이자 양주 경계 내에 있던 곳으로 의정부와는 전혀 다른 지역이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관계자는 10월29일 “학술 고증을 통해 옛 견주는 양주이고, 의정부는 양주에서 나왔기 때문에 태조와 태종이 의정부에서 만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8월29일 의정부문화재단이 주최한 ‘지역역사 문화포럼(지역역사문화를 품은 특화콘텐츠, 지역정체성을 깨우다)’에서조차 이 문제가 나왔다.
‘의정부의 지명 유래와 지역정체성 확립의 방향’을 주제 발제한 최주희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는 “태종 2년(1402) 11월 이성계의 어가가 이동한 경로를 실록에서 추적해보면, 개성-김화-철령-함주-맹주-평양-금교-개성으로 파악된다”며 “12월에 태상왕 이성계가 환궁하는 길에 태종 이방원과 만난 곳은 의정부가 아니라 개성의 서북쪽 황해도 평산에 위치한 금교역”이라고 밝혔다.
한 역사학자는 “태조와 태종이 의정부에서 만났다고 역사적 고증을 했다면 그 고증한 사람은 역사왜곡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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